"다른 건 없었다. 너무 이기고 싶었다."
롯데 자이언츠의 가을야구는 준플레이오프에서 마무리 됐다. 5년 만의 가을야구에서 강팀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잘싸웠다. 5차전까지 갔다. 다만, 5차전을 0대9로 완패해 아쉬움이 남았을 뿐. 그래도 여러 선수들의 플레이에 롯데팬들은 환호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선수가 손아섭. 3차전 패색이 짙은 상황에도 추격의 홈런을 친 뒤 평소 하지 않던 투지 넘치는 세리머니를 하고, 4차전 홈런 2방을 터뜨리며 5차전까지 팀을 이끈 주역이었다. 가을야구, 큰 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진정한 리그 최고 좌타자로 거듭났다. 이제 어느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았을 즈음, 손아섭과 연락이 닿았다.
-치열했던 준플레이오프를 치렀다. 끝난 후 어떻게 지냈나.
▶아직도 자고 일어나면 야구장에 나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5차전이 너무나 아쉬워서... 후회 아닌 후회가 남는 것 같다. 그래도 지인들과 만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기분 전환을 위해 애쓰고 있다. 두산과 NC의 플레이오프 경기도 챙겨보려 한다. 다른 팀 경기를 보면 재밌기도 하고, 배우는 것도 많다. 물론 '저 무대에서 우리 팀이 뛰고 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도 든다.
-롯데는 떨어졌지만, 손아섭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앞에 잘한 건 아무 소용 없다. 5차전에서 힘이 못된 것 같아 너무 아쉬울 뿐이다. 만약, 우리가 플레이오프에 올랐다면 내가 만들어낸 결과도 빛이 났을텐데, 마지막 패했기에 큰 의미가 없다.
-2011년 플레이오프 1차전 통한의 병살타가 기억난다. 그 때 아픔이 이번 가을야구에 도움이 됐나.
▶그 때를 돌이켜보면 젊은 혈기에 자신가미 넘쳤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반대로 지금은 결과를 걱정한다. 그 때에 비해 기대치도 높아지고, 나 스스로도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커지더라. 그래도 그 때와 비교하면 여유가 생겼고, 어느정도 평정심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오직 패기로 투박하고, 거친 플레이를 보여드리는 모습을 다소 줄었지만 요령이 생겼다고 할까. 그 때는 '무조건 친다'고 초구에 과감하게 쳤지만 지금 그 때와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면 '컨트롤이 좋은 투수가 아니면 무조건 하나 보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비하인드스토리를 하나 소개해드리면, 내 타석 뒤이 들어오는 전준우형에게 "체인지업이 초구에 들어올 것 같다. 노리고 들어가겠다"고 했는데 정우람(당시 SK) 형이 체인지업을 던졌었다. 그래서 자신있게 휘둘렀었다.
-3차전 지고 있는 상황 세리머니, 그리고 4차전 홈런성 타구를 날리고 '제발'이라고 간절히 외치는 게 화제였다.
▶3차전 누가 봐도 뒤집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만약, 그 경기가 5차전이었다면 내가 홈런을 치고 그렇게 했을 지 나도 의문이다. 그런데 3차전이었다. 4차전을 치러야 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3차전이 아니더라도 4차전에서 너무 이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홈런을 치고 2루를 도는데, 어려운 상황에서도 너무 좋아해주시는 롯데팬들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덕아웃을 향해 세리머니를 한 것 같다. 나도 내가 왜 그런 세리머니를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모르겠다. 가슴에서 우러나온 느낌이 행동으로 이어졌다.
-포스트시즌 강한 인상에 롯데팬들의 지지도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제 야구 끝난 지 3일 됐는데, 그 전보다 더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신다. 그 전에도 좋아해주셨지만 이번 준플레이오프를 정말 많은 분들이 지켜봐주셨다는 걸 느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롯데 야구를 보셨고, 내 마음 이상으로 아쉬워하는 모습들을 보며 말로 표현이 안되는 감정이 느껴지더라. 우리가 플레이오프 갔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그 생각만 났다. 너무 감사하다. 나도 부족하겠지만, 팬들께 보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올시즌 전체를 돌이켜보자. 잘된 점, 아쉬운 점은?
▶잘된 점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144경기 전 경기를 2년 연속 뛰게 된 것이다. 가장 큰 목표였다. 선수는 경기를 뛰어야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잘해도 다치면 소용없다. 두 번째는 최근 몇년 장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변화도 줘봤고 실패도 했다. 그래도 20개 홈런을 치고,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해 어느정도 목표를 이뤘다. 조금 아쉬운 점은 타율(0.335)이다. 더 좋은 기록 낼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는데, 내 부주의로 인해 타율을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타점도 90개 정도는 예상했는데 거기에 못미쳤다. 8월에 정말 컨디션이 좋았는데, 거기서 더 잘하려고 미세한 변화를 줬다 흔들린 적이 있다. 그게 내 부주의였다.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부른다는 걸 올시즌을 통해 배웠다.
-200안타(193안타 마감)는 의식했나, 안했나. 아깝지 않나.
▶솔직히 200안타 목표는 갖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마지막까지 내가 엄청 신경쓴 줄 알더라.(웃음) 하지만 솔직히 나는 일찍 포기했었다. 10경기 남기고 안타 10개가 남았다면 의식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즌 막판 남은 경기수와 안타수를 봤을 때 도저히 안될 것 같더라. 그래서 요즘 후회를 하고 있다. 마지막까지 의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너무 마음을 내려놓고 한 게 집중력이 떨어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마지막 5경기 성적이 안좋았다. 차라리 욕심을 내봤으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 후회는 한다. 앞으로 야구할 날은 많다. 200안타 기록은 계속 목표로 하겠다.
-최근 몇년 간 1, 2, 3번 타순을 오가고 있는데 자신은 어떤 타순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난 아무래도 2번이 좋다. 사람이 간사한 게, 2번 자리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 나온다. 점점 편하게 느껴진다. 부담은 3번이 가장 심하다. 몰론, 타순은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감독, 코치님께서 정해주시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손광민 시절 우익수 수비를 30점이라고 한다면, 현재 우익수 수비는 스스로 몇 점이나 줄 수 있나.
▶지금은 70점 정도는 왔다고 생각한다. 수비도 타격과 비슷하다. 전체적으로 나아졌다고 생각하는데, 송구는 이전이 나았단 것 같다. 그 때는 앞뒤 안가리고 주자 잡으려고 무조건 송구를 쐈다. 그 때는 주자가 뛰면 속으로 "땡큐"를 외쳤다. 그런데 요즘은 잡을 수 있는 확률이 50% 이상이라고 생각할 때만 강한 송구를 한다. 주자를 잡을 수도 있지만, 그 송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큰 실책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구를 계속하다 보니, 나도 능구렁이가 되가는 것 같다.(웃음)
-이대호가 돌아온 롯데, 확실히 달라진 게 있었나.
▶대호형이 복귀하니 정말 든든하더라. 야구라는 스포츠가 상대와의 기싸움이 기반에 깔려있다. 이대호라는 선수가 4번에 버텨주면 상대는 위압감을 받고, 우리는 든든함을 느낀다. 그 심리적 요소가 선수 개개인에 자신감으로 연결된다. 정신적으로 선수들에게 큰 플러스 요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손아섭의 트레이드마크는 전력 질주다. 앞으로 선수 생활 마지막까지 그 약속 지킬 수 있겠나.
▶내 햄스트링과 종아리만 버텨주고 건재하다면 난 은퇴할 때까지 무조건 전속력으로 뛸거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하며 배운 게 전력질주였다. 괜히 멋있어보이려 하는 것도 아니다. 전력질주를 해야 상대방 실책을 유도를 할 수 있다. 내 안타 기록과 관계 없이, 팀 승리에 도움이 되기 위함이다. 실책 하나가 경기 흐름을 정말 크게 바꾸는 경우가 많다. 보통 한 이닝 대량득점은 실책이 동반돼야 한다. 그래야 투수가 힘이 빠지고 심리적으로 흔들린다.
-FA(자유계약선수) 자격 취득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손아섭의 행보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아직은 FA 선수가 아니지 않나.(웃음) 개인적으로 머릿속에 그리는 것들은 많지만, 지금 그 얘기들을 말씀드리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FA 자격을 정식으로 취득하면, 그 때 말씀을 드리겠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