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 애스트로스 A. J. 힌치 감독은 19일(이하 한국시각) 벌어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에서 선발 댈러스 카이클이 5회말 2사후 연속안타를 맞고 4점째를 주자 불펜을 가동했다. 카이클은 4⅔이닝 동안 7안타를 맞고 4실점해 결국 패전투수가 됐다. 정규시즌서 14승을 올린 에이스를 5회 이전 끌어내렸다는 점, 이것이 단기전, 포스트시즌이다. 카이클의 투구수는 86개였다. 평소였으면 카이클에게 5회를 마저 맡겼을 것이다.
가을야구는 내일이 없는 경기다. 오늘 무조건 이겨야 한다. 한미일이 따로 없다.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서도 불펜야구가 심화되고 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지난해 포스트시즌서 불펜야구를 앞세워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에 오르자 올해는 너도나도 불펜야구다.
클리블랜드는 지난해 리그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서 선발 트레버 바우어가 1회 손가락 출혈로 던질 수 없게 되자 곧바로 불펜을 가동, 댄 오테로, 제프 맨쉽, 잭 매컬리스터, 브라이언 쇼, 코디 앨런, 앤드류 밀러 등 불펜투수 6명을 동원해 4대2로 승리했다. 경기 후 프랑코나 감독은 "이런 마운드 운용은 몇 번 해봤지만, 불펜투수들이 못할 거란 생각은 안했다. 포스트시즌서 이기기 위해 이런 방법을 선택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란 걸 안다. 그러나 대안은 없다"고 했다. 4경기서 7⅔이닝 3안타 무실점을 한 밀러는 불펜투수로는 이례적으로 시리즈 MVP에 오르기도 했다.
올해 포스트시즌서 뉴욕 양키스의 마무리 아롤디스 채프먼은 1이닝을 넘게 투구가 한 게 벌써 3번이나 된다. 지난 7일 클리블랜드와의 디비전시리즈 2차전에서 9회 등판해 연장 10회까지 2이닝을 던졌고, 9일 3차전서는 1⅔이닝 2안타 무실점 세이브, 12일 5차전서는 5-2로 앞선 8회 마운드에 올라 2이닝 4탈삼진 무실점으로 또다시 세이브를 기록했다. 채프먼은 시카고 컵스 시절이던 지난해 포스트시즌 13차례 등판 가운데 1이닝을 초과해 던진 게 5번이었다. 채프먼은 그 이전 포스트시즌 5차례 등판서는 한 번도 1이닝을 초과한 적이 없다. 불펜야구 트렌드가 본격화된 지난해부터 이같은 투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카고 컵스 마무리 웨이드 데이비스는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디비전시리즈 3차전서 2⅓이닝 동안 44개의 공을 던져 2안타 1실점 세이브를 올렸고, 19일 LA 다저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에서도 3-1로 앞선 8회부터 2이닝 1안타 1실점 세이브를 기록했다. 데이비스는 8회말 공격에서 교체되지 않고 타석에 서는 진기한 장면을 연출했다.
다저스는 이날 컵스전까지 이번 포스트시즌 7경기서 게임당 평균 5.43명의 투수를 썼다. 정규시즌 평균 4.31명보다 1명 이상 많은 투수가 투입됐다는 이야기다. 투수 1명을 더 쓰고 덜 쓰는 건 차이가 크다.
이 때문인지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경기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지난해 포스트시즌 평균 경기시간은 3시간 25분이었는데 올해는 10분이 늘어난 3시간 35분이다. 2015년 포스트시즌은 평균 3시간 14분 밖에 안 걸렸다. 경기 중반부터 투수교체가 잦아지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지난해 프랑코나 감독이 언급했듯 박빙의 승부에서는 가장 컨디션이 좋은 투수를 내고 가능한 자원을 모두 가동해야 한다. 경기가 늘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KBO리그는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포스트시즌은 불펜싸움이다. 선발투수가 조금이라도 이상 조짐을 보이면 불펜 가동이다. 롯데 자이언츠가 NC 다이노스와의 준플레이오프 5차전서 선발 박세웅이 5회 들어 난조를 보임에도 조원우 감독이 불펜 투입 타이밍을 놓치자 비난이 들끓기도 했다. NC와 롯데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양팀 합계 15명의 투수가 등판했다.
선발투수가 포스트시즌서 구원으로 활용되는 것도 불펜의 중요성 때문이다. NC 맨쉽은 정규시즌서 21경기에 선발등판해 12승4패, 평균자책점 3.67을 기록했다. 그런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서는 아예 보직을 불펜으로 바꿨다. 맨쉽은 1,2차전 2경기서 1⅔이닝 4실점했다. 김경문 감독은 "선수들이 맨쉽이 나오는지 몰랐을 것이다. 감독이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있구나라는 것을 선수단 전체가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맨쉽은 지난해 클리블랜드의 주축 불펜투수였다. 김 감독으로선 선발 경험이 많지 않은 맨쉽을 가을야구에서는 불펜으로 쓰는 게 더 낫다는 믿음이 있다는 뜻이다.
정규시즌서 선발로 12승을 따낸 다저스 마에다 겐타는 이번 포스트시즌서 구원으로 4경기에 나가 2승1홀드, 4이닝 무안타 무실점중이다. '선발 왕국' 다저스는 클레이튼 커쇼, 리치 힐, 다르빗슈 유, 알렉스 우드로 이어지는 4인 로테이션이 확고해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가을야구서 마에다를 불펜투수로 활용하려고 이미 정규시즌서 4차례 구원으로 내보낸 바 있다.
일본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불펜투수들의 등판이 잦다. 18일까지 열린 양리그 클라이맥스시리즈 8경기 가운데 5회 강우콜드게임이 선언된 1경기를 뺀 나머지 7경기서 팀당 평균 사용 투수수는 5.00명이다. 퍼시픽리그 클라이맥스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서 세이부 라이온즈 선발 기쿠치 유세이가 9이닝 완봉승을 거둔 것을 제외하면 이 수치는 5.31명으로 올라간다. 클라이맥스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대결하고 있는 라쿠텐 이글스는 이번 포스트시즌 4경기서 평균 4.75명의 투수를 썼는데 이는 정규시즌 평균 3.81명보다 1명 정도 많은 수치다.
그래도 변치않는 사실이 있다. 세이부의 기쿠치가 그랬고, 롯데 조쉬 린드블럼이 준플레이오프 4차전서 8이닝 1실점으로 승리를 따냈 듯 선발투수가 믿음직스럽게 던지고 있다면 절대 바꾸지 않는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