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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불이행'에도 최태웅 웃게 한 노재욱의 '세트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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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장충체육관. 우리카드와의 2017~2018시즌 도드람 V리그 남자부 경기를 마친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의 표정은 밝았다. 만면에 미소를 띤 최 감독은 "점점 경기력이 좋아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만족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 함박 웃음의 중심에 세터 노재욱이 있었다. 경기 전에 내린 자신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지만 결국 최 감독을 웃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적지에서 거둔 짜릿한 3대1(25-18, 22-25, 25-21, 25-15) 승리. 노재욱의 '세트쇼'가 빛났다. 노재욱은 중앙과 좌우 측면을 두루 활용하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이날 총 73개의 세트를 시도해 49개를 성공시켰다. 이 중 매우 뛰어난 세트로 기록된 것만 30개. 쏘는 족족 공격수들의 손에 달라붙었다.

리시브가 불안했을 때도 걱정없었다. 노재욱은 빠른 스탭을 활용해 자세를 신속히 고쳐 잡아 죽어가는 공을 만점 토스로 살려냈다. 여기에 이단 연결도 자로 잰 듯 정확했다. 노재욱은 세트 뿐 아니라 적극적인 디그, 블로킹 가담을 통한 헌신적인 플레이로 팀 분위기까지 살렸다.

만점 활약으로 팀 승리를 이끈 노재욱. 하지만 알고보니 최 감독이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최 감독은 당초 안드레아스의 공격 점유율을 높일 생각이었다. "안드레아스가 리시브 스트레스로 공격을 제대로 못했다. 세터들이 공을 제대로 줄 수도 없었다. 우리카드전부터는 점유율을 높여줄 계획이다." 최 감독의 우리카드전 구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이날 안드레아스의 공격 점유율은 27.5%. 송준호와 같은 수치였다. 문성민과 신영석도 각각 20.9%, 12.1%를 기록했다. 노재욱은 안드레아스의 공격 점유율을 끌어올리라는 최 감독의 지시와 달리 고르게 볼을 배분 했다.

최 감독이 내린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지만 노재욱 입장에선 최선을 다 했다. 사실 최 감독은 노재욱에게 한 가지 지시를 더 했다. '네가 잘 하는 것을 하라.'

노재욱은 우리카드전 전까지 부진을 거듭했다. 최 감독은 지난달 26일 한국전력에 0대3으로 완패를 당한 뒤 "(노재욱에게)슬럼프가 온 건 아닌가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 최 감독은 경기 전 "지난 시즌까지 잘 되던 (노재욱의)패턴들이 먹히지 않아 본인이 혼동을 느끼고 있다"며 "지금까지 노재욱의 강점을 키우기 보단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해왔는데 오히려 그게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이 잘 하는 것을 하도록 둘 것"이라고 했다.

결국 슬럼프 탈출의 열쇠를 선수 본인에게 준 셈이다. 최 감독의 의도를 파악한 노재욱은 안드레아스 공격 점유율에 얽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공을 쏘아 올렸다. 그 결과 안드레아스도 살고, 송준호도 살았다. 신영석도 펄펄 날았다. 제일 중요한 건 노재욱 본인이 살아났다는 점. 최 감독은 "노재욱이 살아나니 전체적인 경기력이 좋아졌다"고 했다.

자신이 잘 하는 것을 하기 위해 감독의 지시는 잠시 잊었다. '완벽주의자' 최 감독은 그런 노재욱을 보며 껄껄 웃었다. 단지 승리해서가 아니다. 노재욱이 스스로 '껍질'을 깼기 때문이다.

한편, 같은 날 열린 여자부 경기에선 현대건설이 흥국생명을 세트스코어 3대0(25-22, 25-21, 25-16)으로 제압했다. 엘리자베스가 23득점으로 승리를 견인했고, 황민경 양효진이 각각 12득점씩 올리며 힘을 보탰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2017~2018시즌 도드람 V리그 전적(19일)

▶남자부

현대캐피탈(5승4패) 3-1 우리카드(4승6패)

▶여자부

현대건설(6승2패) 3-0 흥국생명(2승7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