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에게는 꽤 후한 배려가 옵션으로 붙는다.
'귀한' 선수들을 위해 언제든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거처를 마련해주거나, 여러 개인적인 편의를 봐준다. 한국에서 지내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구단 직원들이 늘 신경쓰고, 통역 업무를 보는 직원은 거의 매니저처럼 선수의 24시간 도우미 역할을 맡기도 한다. 이런 배려는 어디까지나 외국인 선수들이 낯선 나라, 낯선 곳에서 편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부분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영입한 선수들인만큼 야구 외적인 문제는 신경쓰지 않고, 최대한 편안한 환경 속에서 팀에 기여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전혀 다른 분위기인 미국은 제외하고, 가까운 일본과 비교만 해도 다르다. '머니 파워'가 KBO리그보다 센 NPB에서 특급 외국인 선수는 당연히 특급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모든 외국인 선수들이 비슷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구단별 외국인 선수 보유 제한이 없다보니, 그들끼리 무한 경쟁 체제가 구축되어 있다. 1군에서 실력을 보여준 선수들에게만 구단의 대단한 배려와 보상이 뒤따르고, 2군에 머물러있는 선수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실제로 KBO리그에서 뛰다 일본에 건너간 외국인 선수들 가운데 다수가 전혀 다른 분위기에 낯설고 힘들어했다.
넥센 히어로즈의 에스밀 로저스도 한화 이글스에서 뛰던 시절부터 이런 배려에 익숙한 선수다. 젊은 나이에, 빅리거 출신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이 그에 대한 가치를 더욱 높였다. 당연히 KBO리그 구단들도 그를 영입하게 위해 거금을 들였다. 가족을 중시하고, 함께하고 싶어하는 로저스를 위해 늘 가족들과 지낼 수 있도록 구단의 배려가 있었다. 한화 시절에도 로저스가 재활 등판을 하는 곳까지 가족들이 함께 하는 모습이 있었다. 다소 외진 곳에 있는 퓨처스리그 구장까지 구단 직원이 직접 로저스의 가족들이 탄 자동차를 운전해 안내했다. 의미 없는 특별 대우가 아니라, 좋은 성적을 내길 바라는 외국인 선수이기에 구단이 세심한 구석까지 신경쓴 셈이다.
새 팀 넥센에서 개막을 맞자마자 로저스의 경기 중 행동이 화두에 올랐다. 옛팀 한화 선수들에게 경기 중 장난섞인 행동을 했는데, 문제는 지나치게 과했다는 것이다. 홈에서 태그 아웃된 최재훈의 뒷통수를 글러브로 툭 친다던가, 공수 교대 중 이용규의 헬멧을 또다시 글러브로 치고, 견제사를 당한 양성우에게 '바라보고 있다'는 모션을 손가락으로 취한 것은 분명 경기 중에 해서는 안되는 과한 행동이다. 정확히 말해 '프로페셔널'하지 않다.
물론 한화에서 함께 뛰면서 친하게 지냈던 선수들을 상대편으로 다시 만난 것이 반갑고, 신기하고, 재미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로저스는 리틀야구 부원이 아니다. 더군다나 한화 선수들이 득점에 실패하고, 공격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실수를 한 상황에서 이런 장난을 쳤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로저스는 올 시즌 넥센에서 '에이스' 역할을 해줘야 하는 투수다. 넥센은 구단이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로저스 영입만큼은 빠르고 과감하게 진행했다. 그만큼 기대치가 크다. 그런 선수가 시즌 첫 등판 경기부터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었다는 것은, 로저스가 사과할 대상이 한화 뿐만 아니라 팀 식구들도 해당된다는 뜻이다.
외국인 선수들이 받는 배려 못지 않게, 그들 역시 한국야구와 문화에 대한 존중을 몸소 보여줘야 한다. 로저스는 이번 논란에 대해 구단의 경고를 '수긍했다'고 했다. '악동'이 어떻게 달라질지 남은 시즌동안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