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제21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4·15총선이 닷새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19대(2012~2016년) 때는 '사라예보 탁구영웅' 이에리사 의원(66)과 '태권도 레전드' 문대성 의원(44) 등 2명의 엘리트 체육인 출신 의원이 활약했다. 직전 20대(2016~2020년) 때는 현장 체육인 출신이 전무했다. 전문체육-생활체육의 통합기, 학교체육의 전환기, 어느날 갑자기 바뀐 법과 제도가 체육인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삶의 조건을 바꾼다. 현장을 아는, 소신 있는 체육인들의 국회 입성은 그래서 중요하다. 국회의원 300석(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 중 체육인의 이름으로 4·15총선에 도전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금메달의 꿈을 향해 달려온 이들이 금배지에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600만 체육인을 위한 이들의 공약도 함께 살폈다.
▶금메달 꿈꾸던 체육인들의 생애 첫 금배지 도전
'우생순 신화'의 주인공, 임오경 전 서울시청 핸드볼 감독(49)은 4·15총선, 체육인 유일의 지역구 출마자다. 1월 말, 더불어민주당 15호 외부영입 인재로 이름을 올린 그녀는 바늘구멍 경쟁을 뚫고 공천을 받아냈다. 여당의 전통적 텃밭, 경기도 광명갑 전략공천이다. 한체대 출신 임 감독은 2017년 대선 당시 '체육인 2000명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에 적극 나섰다. 지난해 말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하마평에도 오르내렸다. "문재인 정권에서 필요한 정책 중 스포츠계에서 제 힘이 필요하다면 힘들어하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은 마음에서 정치를 결정했다"고 했다. "어디에 있든 그 팀을 최고로 만들었고, 최초의 길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면서 지역구 도전의 이유를 밝혔다. 임 감독은 광명을 '스포츠문화국제도시'로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광명 스피돔을 연계한 스포츠테마파크 조성, 국제 스포츠 이벤트 유치, 스포츠산업종합지원센터 건립 등을 약속했다. 국회 입성시 추진할 '1호 법안'은 학교체육 활성화다. 임 후보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체육교육 확대는 꼭 필요하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운동도 더 많이 하는 게 세계적 추세다. 우리는 공부를 잘하기 위해 체육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여당의 정책 방향인 스포츠 인권 강화, 남북체육교류협력 증진사업도 빼놓지 않았다. 1992년부터 2004년까지 3번의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를 획득한 임 감독은 "스포츠 현장에서 리더십과 승부사 기질로 승리를 이끌어왔던 것처럼 정치인으로서도 승리를 이끌어내겠다"고 다짐했다. 양주상 미래통합당, 양순필 민생당, 김상연 국가혁명배당금당, 김경표 무소속, 권태진 무소속 후보와 경쟁한다.
이 용 전 봅슬레이·스켈레톤국가대표팀 총감독(42)과 김은희 전 테니스 코치(29)는 미래통합당의 '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 후보다. 이 감독이 18번, 김 코치가 23번을 받았다. 정치는 꿈도 안꾸던 '순도 100%' 체육인들이다. '현장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이들을 정치로 이끌었다. "스포츠 현장을 바꾸는 데 가장 가까운 길이 '정치'"라는 결론이다.
이 감독은 2년 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스켈레톤 윤성빈의 금메달, 봅슬레이 4인승 은메달을 빚어냈다. 그의 출마 이유는 확고했다. "정치란 국민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다. 체육인으로서 정치에 도전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다. 체육인들의 삶을 위해서"라고 했다. 이 감독은 "평창에서 금메달도 따고, 스타도 나왔다. 그런데 올림픽 후 유일한 경기장이 사라졌고 약속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비인기종목과 메달리스트 외 선수들은 다시 소외됐다. 지도자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대대적 혁신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이 왔다"고 설명했다. "인기종목, 스타에 의존하는 꿈나무 육성, 선수 지원 시스템의 혁신, 체육재정의 자립을 위한 정책, 도쿄올림픽 적극 지원"을 공약했다. 이 감독은 "이에리사 의원님이 19대 때 추진하다 무산된 체육인복지법도 꼭 통과시키고 싶다"면서 "체육은 늘 만만하고 늘 휘둘린다. 여야를 떠나 체육인을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하겠다. 체육만 바라보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23번을 받은 김은희 코치는 '체육계 미투 1호'다.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성폭행한 코치를 상대로 끈질긴 싸움끝에 17년만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김 코치는 "승소하면서 많은 피해자들의 희망이 됐지만, 여전히 스포츠 현장 속 아이들이 인권 침해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털어놨다. "인식전환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정치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제도와 법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체육인으로서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고, 학생선수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점진적으로 바꾸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면서 "스포츠혁신위원회 권고의 방향성에 공감하지만 속도, 내용면에서 현실성이 부족하다. 스포츠 인권, 디지털 성범죄 등에 대한 법안도 너무 뒤처져 있다. 현실을 반영한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체육계 친화적 후보는 누가 있나
현장 체육인 출신은 아니지만 입법, 행정부에서 체육계와 소통하며 꾸준한 관심을 표해온 후보들도 눈에 띈다. 학교체육, 생활체육 활성화, 스포츠 혁신 등 문재인 정부의 주요 체육정책을 입안하고 주도해온 안민석 문화체육관광위원장(54·더불어민주당)이 경기도 오산에서 꿈의 5선에 도전한다. 농구선수 출신 전 고용노동부 장관 김영주 의원(65·더불어민주당)도 서울 영등포갑에서 3선 출사표를 던졌다. 김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유승민 IOC위원와 협업해 '후배' 은퇴선수 일자리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선 바 있다.
용인대 체육학 학사, 석사 출신의 '태권도 9단' 이동섭 의원(64)은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노원을에서 재선에 도전한다. 이 의원은 20대 때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해 '국기' 태권도의 법제화를 이끌었다. 또 평창올림픽·패럴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이끌고, 남북 스포츠 협력에 기여한 시인 출신 도종환 전 문체부 장관(65·더불어민주당)은 충북 청주 흥덕구에서 3선에 도전한다. 정권 비판을 이유로 파면된 한민호 문체부 전 체육국장(58)은 '정치1번지' 종로에서 우리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체육인은 아니지만 눈길을 끄는 '체육인 가족'도 있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조재기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과 조재호 전 카바디대표팀 총감독의 동생인 조재희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정책위 부의장(61)이 서울 송파갑에서 첫 국회 입성을 노린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