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휴스턴세계탁구선수권, 도쿄올림픽 스타덤 직후 출전한 생애 첫 세계선수권은 '삐약이' 신유빈(19)에게 시련이었다. 오른손목에 실금이 간 줄도 모르고 신나게 드라이브를 날리던 '탁구신동'은 이후 1년 가까이 대회에 나서지 못했다. 3번의 수술과 재활 끝에 2년 만에 다시 선 세계 무대, 폭풍성장한 신유빈이 눈부시게 날아올랐다.
#.중국 최고의 탁구클럽 루넝클럽 출신 청소년 국가대표 티안민웨이(31, 전지희의 귀화 전 중국 이름)는 열여섯 살 되던 2008년 한국 귀화를 결심했다. 아시아청소년선수권 단식 2위에 오르며 주목받았지만 국가대표까지는 무리였다. 올림픽의 꿈 하나로 2014년 첫 태극마크를 단 전지희는 국제규정에 따라 귀화 7년 만인 2018년 첫 세계선수권 무대를 밟았고 5년 만인 2023년 더반에서 간절했던 첫 결승행, 첫 메달의 꿈을 이뤘다.
'대한민국 여자탁구의 희망' 신유빈(대한항공·세계 26위)-전지희(미래에셋증권·세계 36위)조(세계 12위)가 더반세계탁구선수권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신유빈-전지희조는 28일(한국시각) 남아공 더반 인터내셔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선수권 여자복식 결승에서 중국 첸멍-왕이디조(세계 7위)에 게임스코어 0대3으로 졌다. '디펜딩챔피언' 쑨잉샤-왕만위조(세계 1위)를 3대0으로 돌려세우는 '대형사고'를 치며, 1987년 뉴델리 대회 양영자-현정화 이후 여자복식 사상 36년 만에 결승에 올랐지만 마지막 만리장성의 벽이 높았다. 금메달은 놓쳤지만 한국 여자탁구의 부활 신호탄이었다. 2011년 김경아-박미영조 이후 무려 12년 만에 메달을 되찾아온 '띠동갑' 신유빈-전지희조의 활약은 시종일관 눈부셨다.
8강에서 유럽챔피언조를 꺾고 12년 만의 동메달을 확보한 후 전지희는 "(신)유빈이 클 때까지 기다린 게 잘한 것같다. 잘 버텨준 스스로에게도 고맙다"고 했다. 4강에서 '세계 1위' 중국조를 꺾고 결승행을 확정지은 후엔 "미친 것같아요!"를 외쳤다. "쿨한 유빈이 덕분에 나도 겁이 없어진다"며 웃었다. 결승전 직후, 신유빈이 눈물을 쏟았다. 2년 전 생각에 감정이 복받쳤다. "재작년 이 세계선수권에서 부상을 당했었는데…"라며 눈물을 글썽이자 '언니' 전지희가 "괜찮아. 덕분에 이런 날이 오잖아"라고 다독였다. '다시 탁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만큼 지독한 부상, 꽃길만 걸어온 '탁구신동'은 나락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삐약이'는 다시 날아올랐다. 패기만만 신유빈의 오른손, 백전노장 전지희의 왼손이 신들린 듯 맞아들며 기적처럼 대한민국 여자탁구의 메달이 돌아왔다. 환상의 복식조는 서로에게 공을 돌렸다. 신유빈이 "언니가 아니었으면 세계선수권 결승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자 전지희는 "유빈이 덕분에 이 자리까지 왔다"고 화답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이후 힘든 시기를 버텨온 전지희는 신유빈이 감내해야 할 에이스의 무게에 공감했다. "유빈이가 한국 여자탁구의 길을 새로 만드는 느낌"이라면서 "책임감도 더 커질 것 같고, 국민들이 기대도 많이 할 것 같다. 하지만 유빈이는 정말 착실한 선수다. 올해 평창아시아선수권, 항저우아시안게임을 함께 잘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대회 대한민국 탁구대표팀은 남녀복식에서 은메달 2개(장우진-임종훈조, 신유빈-전지희조), 동메달 1개(이상수-조대성조)를 따냈다. 한국 탁구가 개인전 세계선수권에서 3개 이상의 메달을 따낸 건 2003년 파리대회 이후 20년 만이다. 탁구대표팀은 31일 귀국한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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