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정이 넘치는 한국 사회의 문화. 야구도 예외는 아니다.
KBO만의 특별한 끈끈함이 있다.
좁은 풀 안에 중·고교를 거치면서 대부분 아는 사이. 선·후배로 엮어있다 보니 매우 평화롭다. 빈볼 시비는 부쩍 줄었다. 어지간한 사구는 곧바로 사과가 이뤄지고, 이해하고 넘어간다.
어느 리그에서도 보기 힘든 데탕트 문화. 외국인 선수들 조차 따라하는 독특한 KBO만의 문화로 자리매김을 했다.
하지만 선은 지켜야 한다. 사생결단 승부를 가늠하는 전쟁터 같은 매 경기. 열렬히 성원하는 팬을 위해 그라운드에서 만큼은 진지해야 한다. 자칫 오해를 부를 수 있다.
KBO가 그라운드 내 회합 금지 조항을 명시한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또 하나 독특한 문화가 있다.
경기 전 선·후배 사이에 배트를 주고 받는 관례.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2군에서 막 올라온 후배에게 배트를 전하는 건 아름답다. 현실적 도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혹 잘 치고 있는 타자가 슬럼프에 빠진 타 팀 동료에게 배트를 전하기도 한다. 통상 부진에 빠진 선수의 요청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간혹 상대팀 선후배에게 받은 그 배트로 결정타를 날리는 선수가 있다. 당연히 기분이 좋다.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런 경우, 해당 선·후배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 예의다.
분패를 한 팀, 특히 상대 팀에 결정타를 내주고 패한 팀은 속이 편치 않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행동이 바로 인터뷰에서 "OOO 형(혹은 동생)이 준 배트로 결정적인 안타를 쳤다"고 말하는 경우다. 눈치 없는 행동이다.
선의로 그 배트를 준 선·후배를 난감하게 만드는 한마디.
5일 경기에서도 그런 케이스가 있었다.
울산에서 열린 롯데-삼성전. 롯데 포수 유강남은 모처럼 맹타를 휘두르며 연승을 이끌었다.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홈런 1) 3타점 1득점으로 10대3 승리를 공수에 걸쳐 견인했다.
유강남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경기 전에 (삼성) 구자욱과 잠깐 만났다. 자욱이한테 방망이를 하나 받았는데, 그걸로 오늘 잘 쳤다. 내가 기를 뺏은 건 아닌가 싶다"며 웃었다.
농담이었지만 자칫 구자욱으로선 난감했을 수 있다. 삼성 팬들로선 썩 유쾌하지 않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대구 라이온즈파크에서 LG 시절부터 유독 잘 치던 타자. 슬럼프 탈출을 도와준 선수가 구자욱이었다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다. 이런 경우는 비단 유강남 뿐 아니다. 승리에, 맹활약에 취해 선의를 베푼 상대 팀 선수를 난감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정이 넘치는 끈끈한 문화. 그 안의 주고 받음이 나쁜 건 아니다.
다만, 승자의 배려가 필요하다. 패자를, 패자의 소속팀을, 패자의 소속팀의 팬들을 자극할 필요는 굳이 없다. 누구나 비슷한 상황에서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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