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야구의 '성지'인 사직야구장은 '사직 노래방'으로 통한다. 롯데 자이언츠 열성팬들이 쏟아내는 압도적인 응원가가 구장 전체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노래방으로 만들어 버린다. 응원에 관한 한 부산, 롯데는 한국프로야구 '넘버1'이다.
새로운 야구를 찾아 한국에 온 외국인 선수들에게 KBO리그에 대한 인상을 물어보면, 빠짐없이 응원 문화를 이야기한다. 경기 내내 단상의 응원단장이 다양한 응원을 유도해 뜨거운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 끊임없이 데시벨 높은 음악이 몰아치고, 치어리더들이 다이내믹한 춤으로 관중들과 호흡한다. 홈 팀 선수가 나올 때마다 테마곡이 나오고 선수 응원가가 동원된다. 또 경기 중엔 상황별로 응원구호가 등장해 '지금 상황을 절대 놓치면 안 된다'고 알려준다.
한 외국인 선수는 경기 중에 나와 더그아웃 뒤 관중석을 바라봤다고 했다. 유튜브 영상으로 미리 접하고 왔는데도 직접 보니 신기했을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응원 문화가 KBO리그 1000만 관중 시대를 여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많은 팬들이 야구뿐만 아니라 응원이 좋아 경기장을 찾는다. 야구장에서 팬들은 응원하는 팀으로 하나가 된다.
그런데 야구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어 하는 팬들이 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응원이 피로감을 줄 수도 있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야구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은 이들이 있다. 몇 년 전 한화 이글스는 대전야구장 응원 단상을 우익수쪽 관중석으로 옮겨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프로 스포츠는 관중에 맞춰 갈 수밖에 없다. 대다수 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일본의 한 원로 야구인이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야구 외적인 소음 없이 온전히 야구를 즐기는 경기다.
가케후 마사유키 한신 타이거즈 OB 회장(70)은 21일 고시엔 역사관 운영회의에서 '무음 경기'를 이야기했다. 올해 구단 출범 90주년에 맞춰 낸 아이디어다.
그는 4만 관중이 야구 소리에만 집중해서 관전하는 경기가 있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토 데루아키의 타구음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응원 소리에 묻혀버린 야구 본연의 소리를 들어보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다. 무관중으로 치른 코로나 시기와 차원이 다른 경기가 될 것 같다.
간사이 지역의 '맹주'인 한신은 일본프로야구 최고 인기팀이다. 뜨거운 육성 응원으로 유명하다. 한신은 지난해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제치고 최다 관중 1위를 했다. 홈구장 고시엔구장에 평균 4만명이 넘는 관중이 입장해 한신을 응원했다.
아와이 가즈오 한신 구단 사장이 가케후 회장의 제안에 호응했다. 그는 "올해 실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디어를 살려보고 싶다"며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미스터 타이거즈'로 불렸던 가케후 회장은 통산 349홈런을 기록한 레전드다. 그는 세 차례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고, 1982년 홈런-타점-출루율 3관왕에 올랐다. 그는 1985년 한신의 재팬시리즈 첫 우승 주역이다. 한신은 3번 랜디 바스-4번 가케후-5번 오카다 아키노부로 구성된 강력한 중심타선을 앞세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전에도 '무음 경기'가 있었다.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이 요미우리를 이끌던 2000년 6월 14일 도쿄돔에서 열린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전이 그랬다.
4만 관중으로 가득 찬 고시엔구장에서 무음경기가 개최된다면 매우 특별한 이벤트로 기억될 것 같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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