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가 전쟁터같이 초토화됐으니 평생 사셨던 어르신들의 상심이 크시죠."
대형 산불 발생 이틀째에 접어든 23일 오전 9시께 경북 의성군.
의성군 내에 들어서자 자욱한 연기와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다.
도로 주변 산들은 이미 검게 변했고 곳곳에서 간간이 연기가 피어 올랐다.
주민들은 도로변에서 검게 타버린 산을 멍하니 지켜보기도 했다.
산불에 주택 3채가 전소된 안평면 신월리에서는 주민들이 피해 상황을 파악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산불에 전소된 주택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신월리 주민 김은동(45)씨는 "산에서 불씨가 바람을 타고 넘어왔다"며 "옆집이 싹 다 불에 타고 우리 집에도 옮겨붙더니, 그 불이 뒷산을 타고 또 넘어갔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밤새도록 물을 뿌리며 집을 지켰다"며 "동네가 전쟁터같이 초토화됐으니, 평생 사셨던 어르신들의 상심이 크시다"고 하소연했다.
부모님 주택이 전소된 김호철(57)씨는 "그나마 사람은 안 다쳤으니 천만다행으로 생각하지만 올해 90세이신 엄마가 평상 살던 터전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산불은 불씨를 날리며 마을 곳곳의 주택을 태웠다.
가까스로 주택 피해를 면한 마을 주민도 농작물 피해는 피하지 못했다.
의성군의 특산물인 마늘밭이 마을 곳곳에 있지만, 산불 열기가 닿으며 마늘 모종이 말라버린 상태다.
마늘 농사를 짓는 황장하(71)씨는 "마늘이 열기에 다 쪼그라들었다"며 "살다 살다 이런 불은 처음 봤다"며 혀를 찼다.
그러면서 "이제 농번기이고,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빨리 피해 안정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의성읍 중리리의 한 농산물 유통업체는 공장 건물 2동이 전소되는 피해를 봤다.
전날 밤의 열기가 미처 가시지 않은 공장 건물 앞에서는 공장 직원들이 망연자실 서성였다.
공장주인 김양수(46)씨는 "새로 지은 지 일주일도 안 된 공장이다"라며 "산과 바로 붙어있으니 불길이 들이닥치면서 다 전소됐다"고 말했다.
인근 야산에서는 한 가족이 검게 변한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구에서 왔다는 이모(52)씨는 "산불 소식을 듣고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며 "산이 다 타버려 산소가 괜찮은지 보러 왔는데, 어머니가 걱정이 많으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씨의 어머니는 산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산림청은 전날 오전 11시 24분께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하자 2시간 46분 만인 오후 2시 10분께 산불 3단계를 발령했다.
산불 3단계는 피해 추정 면적이 100∼3천㏊ 미만에, 초속 11m 이상 강풍이 불고 진화 시간이 24∼48시간 미만으로 예상될 때 발령한다.
의성군은 한 성묘객이 '묘지를 정리하던 중 불을 냈다'며 직접 119에 신고했다고 설명했다.
ps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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