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탁구천재' 안재현(한국거래소)이 세계탁구선수권 8강에서 멈춰섰다. '브라질 천적'의 벽에 막혀 6년 만의 포디움을 눈앞에서 놓쳤다.
안재현은 24일(한국시각) 카타르 도하 루사일 스포츠아레나에서 열린 2025년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선수권 남자단식 8강에서 '세계3위' 브라질 에이스 휴고 칼데라노에게 게임스코어 1대4로 패했다.
안재현은 16강에서 파리올림픽 동메달리스트 펠릭스 르브렁(프랑스·세계 7위)을 상대로 4대3 역전승을 거두며 8강에 올랐다. 스피드, 파워, 풋워크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코리아 드라마'라는 찬사 속에 남녀 한국선수를 통틀어 유일하게 단식 8강에 이름을 올렸다. 201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대회 깜짝 4강 이후 최고 성적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8강에서 강한 상대, '비중국계 톱랭커' 칼데라노와 마주했다. 역대전적 5전패, 최근 들어 4연패 했던 천적이다. 출국 전 인터뷰에서 안재현은 이 만남을 예견했었다. "칼데라노는 공이 세다. 비중국계 최고다. 경험도 많고, 짧은 볼을 잘 처리하고 볼도 세다. 주도권을 뺏기면 어렵다. 뭔가 시도하기도 어렵다. 알고도 진다. 제가 싫어하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다. 하지만 내 단점을 해결해야 한다. 한번은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
예상대로 이번에도 그는 강한 상대였다. 안재현은 첫 게임 고전했다. 1-5로 밀렸지만 랠리에선 강력하게 응수하며 2-5로 쫓아갔다. 그러나 칼데라노의 짧은 볼과 노련한 운영에 밀리며 4-11로 1게임을 내줬다. "할 게 없다"먀며 답답해 하는 안재현을 향해 벤치의 오상은 남자대표팀 감독은 "백싸움을 더하면서 견뎌봐라. 견뎌보면 기회가 꼭 온다. 안된다 생각하면 더 어려워진다"고 조언했다.
2게임 안재현의 백드라이브가 작렬하며 내리 2득점했다. 랠리에서 상대 범실을 유도하며 3-2로 앞서갔다. 3-3, 4-4, 팽팽한 흐름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 칼데라노의 강한 볼에 밀리며 4-6으로 역전을 허용했고, 5-10에서 안재현은 전광석화같은 백핸드 스핀을 선보이며 6-10까지 추격했지만 결국 6-11로 2게임도 내줬다.
3게임 안재현의 반전이 시작됐다. 특유의 빠른 박자가 살아나며 5-1로 앞서갔다. 테이블에서 떨어져 치는 랠리에선 파워, 기술 모든 면에서 지지 않았다. 7-3. 구석, 테이블 끝자락을 파고드는 송곳같은 공격에 ITTF 중계진은 "매직(마술)"이라며 감탄했다. 그러나 칼데라노의 파워풀한 톱스핀이 살아나며 9-8까지 추격했다. 오상은 감독의 타임아웃 직후 안재현의 백핸드가 작렬했다. 게임포인트를 잡았다. 빨랫줄 랠리를 이겨내며 11-9, 안재현이 뜨겁게 포효했다.중계진이 '마라톤맨이 이제 그의 레이스를 시작했다'며 기대를 표했다.
그러나 4게임 칼데라노가 전열을 정비하고 강공으로 나섰다. 안재현도 전광석화같은 역습으로 맞섰다. 5-4까지 추격하더니 기어이 6-6, 7-7 팽팽한 흐름을 가져갔다. 그러나 이후 칼데라노의 파워풀한 백드라이브에 흔들렸다. 7-11로 3게임을 내줬다.
마지막 5게임, 2-2에서 안재현이 테이블 아래 볼을 걷어올리며 완급 조절, 마구로 상대를 압도했다. 오상은 감독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4-2로 앞서갔다. 불리한 상대지만 포디움을 호락호락 내줄 뜻은 없었다. 그러나 칼데라노에게 서브 포인트를 내준 후 5-6으로 밀렸다. 6-6으로 타이를 만들었고, 8-10으로 매치포인트를 내준 후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9-10까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눈부신 투혼에 환호성이 쏟아졌다. 브라질 벤치가 타임아웃을 외쳤다. 상대 테이블 구석으로 풀스윙으로 볼을 찔러넣었다. 10-10, 듀스 게임이 시작됐다. 10-12, 게임스코어 1대4로 패했지만 '멋진 승부'를 하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초반 상대 흐름에 말려 1-2게임을 쉽게 내준 부분이 아쉬웠다. 3~5게임에선 일진일퇴의 승부를 펼쳤다. 상대전적 6전패지만, 다음 맞대결을 충분히 기대해볼 만한 경기력이었다.
안재현이 단식 8강으로 자신의 4번째 개인전 세계선수권을 마무리했다. 비록 메달을 놓쳤지만 돌아온 천재, 안재현의 부활이 반갑다. 세계 17위, 안재현은 이번 대회 8강에 오르며 올 시즌 목표 삼은 톱10을 눈앞에 두게 됐다. 안재현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내가 부족했다. 솔직히 오늘 밀린 게 많았다"고 인정한 후 "8강에서 지는 건 뼈아프다. 메달 유무가 차이가 크다. 힘들긴 하지만 다시 잘 준비하겠다"며 다시 도전의 각오를 다졌다.
한편 4강행과 함께 브라질 선수 첫 동메달을 확정지은 휴고 칼데라노는 안재현에 대해 "여러 번 붙어봤지만 안재현은 정말 강한 선수다. 이 대회에서 동메달도 땄던 선수다. 언빌리버블한 샷을 보여줬다"며 리스펙트를 표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도하세계탁구선수권 풀기자단
<안재현 8강전 후 일문일답>
-아쉬운 결과다.
▶경기를 이기면 기분이 좋고, 지면 기분이 안좋은게 당연하지 않겠나. 오늘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내가 부족했다. 솔직히 오늘 밀린게 많았고, 상대가 나랑 상성이 잘 안맞았다.
-상성 이야기가 궁금하다.
▶경기가 초반에 밀리고, 중반에 할 만하다 결국 후반에 졌다. 내 단점을 잘 파고드는 유형이라 더 철저히 대비해야 할 거 같다.
-한 경기만 더 이겼으면 메달이었다.
▶8강에서 지는 건 뼈아프다. 메달의 유무가 차이가 크다. 힘들긴 하지만 다시 준비하겠다. 그래도 이번 대회에서 훈련할 때 좀 더 생각하고, 잘 준비했더니 메달과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긍정적이다.
-2게임 2-1에서 항의했던 내용이 궁금하다.
(안재현은 칼데라노가 손가락을 구부려 야구의 '너클볼' 그립으로 서브를 넣는 동작을 놓고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내가 어릴 때 배웠던 서브 규정은 서브 상황에서 손가락을 다 펴고, 공이 보여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근데 칼데라노가 (손가락을 구부리는 등) 공을 가리는 성향이 있다. 이걸 1게임부터 어필하려고 하다 어려운 상황이 와서 2게임에서 어필했다.심판은 칼데라노가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괜찮다고 판정했다. (그전에도 계속 손가락을 구부렸나) 맞다. 계속 구부렸다. 비디오 판독을 사용할까도 했는데, 심판이 손을 구부려도 공이 보이면 된다고 얘기하더라.(국제탁구연맹 규정에 따르면 신체장애가 있는 선수의 경우 서브 규정이 완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