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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렇게 다 잡아야만 했냐?' 옛 동료 슈퍼수비에 날아간 이정후의 장타, 운도 지지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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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안 될 때(=슬럼프 시기)는 뭘 해도 안되는 법이다. 이전보다 더 많은 연습이나 다양한 방식의 심리 코칭도 소용없다.

심지어 아주 잘 맞은 타구가 한 시즌에 몇 차례 안 나오는 슈퍼 호수비에 잡히기도 한다. 그런 장면이 나오면 선수는 '이게 또 안되나'하면서 더 좌절하게 마련이다. 슬럼프가 장기화되는 수순이다.

하필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이런 상황에 딱 걸려 버렸다. 2개월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타격 슬럼프를 깨트릴 만큼 제대로 힘이 실린 타구가 나왔는데, 상대 수비가 이걸 냅다 잡아채버렸다. 운이 없어도 너무 없는 케이스다. 결국 이게 화근이 돼 '무안타 경기'로 이어져버렸다. 하필 호수비의 주인공은 지난해 이정후의 메이저리그 적응을 도왔던 선배 오스틴 슬래이터였다.

시즌 두 번째 7번 타순으로 강등됐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정후가 2경기 연속 무안타에 그쳤다.

이정후는 29일 오전(이하 한국시각)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개런티드 레이트필드에서 열리는 2025 메이저리그(MLB)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원정경기에 7번 중견수로 선발 출격했다. 이정후가 7번 타자로 나가는 건 지난 20일 열린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의 홈경기 이후 시즌 두 번째다.

샌프란시스코는 크리스티안 코스(3루)-라파엘 데버스(DH)-엘리엇 라모스(좌익수)-도미닉 스미스(1루수)-윌리 아다메스(유격수)-마이크 야스트렘스키(우익수)-이정후(중견수)-앤드류 키즈너(포수)-브렛 위즐리(2루수) 순으로 타선을 구성했다.

전날 승리로 3연패 탈출에 성공한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2연승을 위해 타순을 크게 흔들었다. 이정후를 7번에 넣은 것도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이정후가 슬럼프에서 벗어나야 샌프란시스코의 공격도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였다. 샌프란시스코 타선은 이날 산발 4안타로 묶이며 1점도 내지 못하며 결국 0대1로 영봉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정후도 3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시즌 타율은 0.246(301타수 74안타)로 떨어졌다. 2할4푼 유지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최근 7경기 타율이 겨우 0.087(23타수 2안타)에 불과하다. 심각한 단계를 넘어서 최악의 상태다. 이러다가는 마이너리그에서 타격 밸런스를 재조정하고 오라는 지시가 떨어질 수도 있다.

이날은 운도 따르지 않았다. 이정후는 2회초 2사 후 첫 타석 때 호쾌한 스윙을 하며 정타를 날렸다. 화이트삭스 선발 애드리안 하우저를 상대로 볼카운트 1B2S에서 4구째 낮은 체인지업(시속 84.4마일)을 제대로 후려쳤다. 타구 속도가 무려 104.9마일(시속 약 168.8㎞)까지 나왔다. 탈출각도도 19도로 상당히 좋았다. 보통 이 정도 타구는 장타로 이어지는 법이다. 담장을 넘어가거나 펜스를 때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이런 타구가 수비에게 잡히는 경우가 나온다. 명수비 영상에 등장하는 케이스다. 하필 이런 상황이 이정후에게 들이닥쳤다. 화이트삭스 우익수 슬래이터가 환상적인 호수비를 펼쳤다. 우중간 펜스 앞까지 타구를 쫓아가다가 펜스 바로 앞에서 점핑 캐치로 타구를 낚아챘다.

타구 궤적으로 미뤄보면 펜스 상단을 직격하게 될 최소 2루타성 타구였다. 하지만 베테랑 외야수 슬래이터는 정확히 공을 잡았다. 그리고 슬래이터가 잡아낸 건 2루타성 타구가 아닌 이정후의 슬럼프 탈출 희망이었다.

운명의 장난같은 장면이다. 슬래이터는 지난해 스프링캠프에서 메이저리그에 첫 발을 내디딘 '루키' 이정후를 도와주던 '친절한 선배'였다. 그러나 슬래이터는 지난해 7월초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됐다. 이후 슬래이터는 7월 말 볼티모어로 다시 트레이드 돼 시즌을 마쳤다.

이후 슬래이터는 지난 해 12월 1년-175만달러 조건으로 화이트삭스에 입단했고, 재활에 성공해 메이저리그 무대에 돌아온 이정후와 1년 만에 인터리그 경기에서 만난 것이다. 몇 안되는 인터리그 경기에서 이정후와 재회한 것도 모자라 1년에 몇 차례 안 나오는 특급 호수비로 이정후의 슬럼프 탈출 희망을 잡아낸 것이었다.

슬래이터의 특급 수비 앞에 좌절한 이정후는 이후 좋은 타구를 날리지 못했다. 5회초 1사 후에는 하우저의 초구 싱커(91.9마일)를 받아쳤지만, 중견수 정면으로 향했다. 7회초에도 역시 하우저를 상대로 좌익수 뜬공을 치는 데 그쳤다.

이정후의 타석은 여기까지였다. 2회초 2루타성 타구가 슬래이터의 호수비에 잡힌 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 경기였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