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이건 축구가 아니다."
29일(한국시각) 2025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16강전을 마친 첼시의 엔초 마레스카 감독의 말이다.
이날 첼시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뱅크오브아메리카스타디움에서 벤피카(포르투갈)와 대회 16강전을 치렀다. 하지만 경기 시작부터 종료 시점까지 무려 5시간이 소요됐다. 웬만한 프로야구 경기보다 긴 시간이 소요됐다.
막판까진 괜찮았다. 후반 19분 리스 제임스의 프리킥 선제골로 앞서가던 첼시는 후반 41분 낙뢰 예보에 따라 경기 중단 통보를 받았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경보가 가시지 않은 채 2시간이 흘렀고, 첼시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2시간 뒤 재개된 승부에서 첼시는 후반 추가시간 종료 직전 벤피카에 페널티킥을 내줬고, 앙헬 디마리아에게 실점하면서 결국 연장에 접어들었다. 연장전에서 상대 퇴장으로 수적 우위를 점한 첼시는 3골을 몰아치면서 4대1로 승부를 마무리 했다.
하지만 마레스카 감독에겐 상처 뿐인 영광이었다. 그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경기가 중단되면서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어 "이건 축구가 아니다. 벌써 많은 경기가 중단됐다. 보안상의 이유로 경기가 중단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이건 아니다"며 "(낙뢰를 피하기 위해) 이렇게 오랜 시간 실내에서 기다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환경이 계속된다면 아마도 대회 개최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 동부 지역은 6~7월마다 낙뢰 사고가 빈번하다. 이로 인해 반경 8마일(약 13㎞) 내에 낙뢰가 있을 경우 즉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도록 하고, 30분 동안 낙뢰가 없을 경우에만 야외 활동을 허가하는 이른바 '8마일룰'을 시행 중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가 동부 중심으로 펼쳐지면서 클럽월드컵이 8마일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K리그1 울산 현대도 마멜로디 선다운스(남아공)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 시작 직후 8마일룰에 의해 경기가 중단돼 대기하다 결국 감각을 잃고 패한 바 있다.
이번 클럽월드컵이 펼쳐지는 동부지역의 뉴저지 매트라이프스타디움과 애틀랜타의 메르세데스-벤츠 스타디움, 마이애미 하드록 스타디움, 필라델피아의 링컨파이낸셜필드는 2026 북중미월드컵 개최 경기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중 메르세데스-벤츠 스타디움을 제외한 나머지 구장은 실외 경기장으로 8마일룰의 영향이 불가피하다. 내년 북중미월드컵에서도 비슷한 상황에 대한 우려를 지우기 힘든 이유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