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박찬욱 감독이 미국작가조합(Writers Guild of America, WGA)에서 제명돼 충격을 안겼다.
지난 8일(현지시각)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 등 외신에 따르면 WGA가 이날 HBO 시리즈 '동조자'의 극본을 집필한 박찬욱 감독과 돈 맥켈러 배우 겸 감독의 회원 자격을 정지하고 두 사람을 조합에서 제명하겠다고 성명을 냈다. WGA는 박찬욱 감독과 돈 맥켈러를 제명한 이유로 지난 2023년 진행된 작가 파업 기간 동안 쓴 '동조자' 극본을 근거로 들었고 구체적인 파업 규정 위반 여부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
퓰리처상 수상으로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탄 응우옌(Viet Thanh Nguyen)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조자'는 자유 베트남이 패망한 1970년대, 미국으로 망명한 베트남 혼혈 청년이 두 개의 문명, 두 개의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겪는 고군분투를 다룬 이야기를 그린 시리즈다. 박찬욱 감독이 1회부터 3회까지,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4회, 마크 먼든 감독이 5회부터 7회까지 연출했다.
무엇보다 '동조자'는 박찬욱 감독이 2022년 개봉한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후 선보이는 작품이자, 2018년 방영된 BBC 시리즈 '리틀 드러머 걸'에 이어 두 번째로 연출한 글로벌 시리즈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박찬욱 감독은 '동조자'의 공동 쇼러너(co-showrunner)이자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것은 물론 제작, 각본, 연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해 호평을 받았다.
'동조자'를 통해 국내를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감독으로 다시 한번 존재감을 드러낸 박찬욱 감독이지만 예상치 못한 WGA의 제명 소식으로 할리우드 활동에 적신호가 켜졌다.
WGA는 1954년 설립된 미국의 영화, 텔레비전, 라디오, 온라인 미디어 등의 각본가들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 1만1500명이 소속된 대규모 노동조합으로 박찬욱 감독도 WGA의 회원이었다.
하지만 WGA는 2023년 5월부터 9월까지 148일간 스트리밍 시대에 맞는 임금 인상 등 보수체계 개편, 노동환경 개선 등을 요구한 파업을 벌이면서 이 기간 미국의 모든 시리즈, 영화가 제작이 지연되거나 방영이 중단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유니버설과 넷플릭스 등 영화·TV 제작자연맹(AMPTP)으로부터 기본급과 스트리밍 재상영 분배금 인상,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작가 권리 보호책 등에 합의하며 파업이 중단, 다시 작품 활동이 재가동됐다.
앞서 WGA는 2023년 작가 파업 중 각종 규정 위반 혐의로 7명의 작가를 징계했다고 밝혀 전 세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 중 4명은 이의 제기 과정에서 이름이 공개됐고 3명은 이번 성명 발표 전까지 신원이 공개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그 중 한 명이 박찬욱 감독으로 밝혀졌다. 박찬욱 감독과 돈 맥켈러는 이번 WGA 제명 결정에 항소하지 않았다.
문제는 WGA에서 제명되면, WGA와 단체협약을 맺은 대형 제작사의 프로젝트에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없다는 것. 뿐만 아니라 WGA가 보장하는 최저 임금 및 수익 분배, 복지 혜택 등 해택도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없게 되는 상황. 할리우드에서 봉준호 감독과 함께 1순위로 러브콜을 받고 있는 박찬욱 감독이 WGA의 제명으로 할리우드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을 것으로 업계는 추측하고 있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