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조선 권인하 기자]"감독 첫 해에 김경문 감독님으로부터 상대에 대한 배려를 배웠다."
9일 잠실에서 열린 한화-LG전서 3회말 선두타자 박해민이 안타를 치고 나갔을 때 LG 염경엽 감독이 박해민을 향해 양 팔로 X자를 그린 장면이 중계 방송에 나왔다. 이에 박해민도 두 손으로 X자를 그리며 사인을 확인하는 장면이 보였다. 염 감독이 도루를 하지 말라는 사인이었다. 당시 6-0으로 LG가 앞서고 있던 상황. 6점차지만 그래도 3회말임을 감안하면 너무 이른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법 했다.
프로야구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불문율 중에선 점수차가 클 땐 리드한 팀이 도루를 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리드하는 팀과 지고 있는 팀이 받아들이는 상황은 좀 다르다. 만약 9일 경기처럼 6-0으로 앞선 3회말 무사 1루서 박해민이 도루를 했을 경우 한화가 선발 엄상백이 이미 내려간 상황이고 분위기가 LG쪽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해 LG가 불문율을 어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LG는 이제 3회인데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 줄 아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염 감독은 3회라는 꽤 이른 타이밍에 도루를 금지시켰다. 그리고 경기는 8대1로 LG의 승리로 끝났다.
염 감독은 10일 한화전을 앞두고 3회 X의 의미를 알렸다.
염 감독은 "감독 1년차 때 상대에 대한 배려를 가르쳐 주신분이 김경문 감독님이다"라면서 "감독을 하면서 내 나름대로의 불문율을 정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제(9일) 같은 경우 우리 팀의 타격 흐름, 경기 흐름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고 우리가 추가 득점이 가능한지를 보고 우리의 불펜 카드, 상대의 카드를 보고 결정한다"는 염 감독은 "보통 내 기준은 6~7점차인데 우리의 승리조를 쓰지 않는 상황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고 불문율을 정한다"라고 했다. 즉 염 감독이 생각한 불문율엔 3회말 6점차에서 추가 득점이 가능하고, LG의 필승조를 투입하지 않고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굳이 상대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도루 1위인 박해민에게 도루 금지 사인을 냈다고 할 수 있다.
"작년엔 모 팀과 대결할 때 6회에 5점차에서 번트를 댔다가 빈볼이 날아온 적이 있다. 당시엔 우리 불펜으론 5점차를 못지킨다고 판단해서 번트를 댔었다. 그래서 경기후 상대 감독과 말다툼을 했었다. 이후 화해하고 지금은 친하게 지낸다"라며 에피소드를 밝히기도 한 염 감독은 "상대 감독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서 불문율을 정하기도 한다. 나만 잘해줄 필요는 없다"라고 했다.
3회 6점차에서 일찍 염 감독의 불문율이 발동됐다는 것은 한화 김경문 감독이 그만큼 매너 있는 야구를 해왔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잠실=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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