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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겨울에 해가 오전 10시 반이 넘어서 뜨는지라 새벽이나 마찬가지인 시간이었지만, 옌스 켈드센(70) 씨와 아비아크 브란트(44) 씨는 오늘도 어김 없이 그린란드 깃발을 들고 영사관 앞에 꼿꼿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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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인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의지가 최고조에 달한 지난 17일 시내로 가득 몰려나와 대대적인 시위를 펼쳐 그린란드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널리 알렸다. 그 이후에도 누군가는 미국측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브란트 씨는 생업도 뒷전에 두고 매일 아침 이곳에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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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나치 독일이 덴마크를 점령하자 대응 조치로 그린란드에 영사관을 개설, 1953년까지 운용하다 문을 닫은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첫 매입 발언이 나온 이듬해인 2020년 6월 그린란드에 영사관을 재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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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국이 돈을 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대로 충분히 잘 살고 있다"며 "그린란드는 세금을 물론 많이 내기는 하지만 덴마크와 마찬가지로 대학교육까지 무상으로 받을 수 있고, 아프면 공짜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일요일인 25일에도 쉬지 않고 나올 것이냐고 묻자 그는 "아직 트럼프의 정확한 의도를 알 수 없다. 일요일이라고 위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가 그린란드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끌 때까지 계속 나올 것"이라고 답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켈드센 씨가 그린란드 국기 아래 페로 제도, 덴마크 국기까지 덴마크 왕국을 구성하는 3개 지역의 국기를 매달고 시위를 펼쳤다.
덴마크에서 태어났지만 19세에 덴마크 북극사령부 소속 군인으로 처음 그린란드에 왔다는 켈드센 씨는 이후 이누이트 여성과 결혼해 그린란드에 정착, 슬하에 자녀와 손자까지 여러 명 두고 행복한 삶을 꾸려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교사, 판사를 거쳐 지금은 조각가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 지역사회에서 유명 인사이기도 한 그는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고 했는데, 지금이 그 꼴"이라며 "믿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주축인 미국이 그린란드에 욕심을 내며 우리를 위협할 줄 몰랐다"고 한탄했다.
그는 "어떤 이들은 그린란드가 미국 땅이 되는 걸 환영할지 몰라도 미국은 한번 들어오면 모든 것을 다 가져간다. 아메리칸 드림'은 실상 '악몽'"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영사관 직원들이 매일 아침 건물 밖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관심을 갖느냐는 질문에는 "하루는 한 직원이 밖으로 나와 근엄한 얼굴로 노려보고 갔고, 하루는 또 다른 사람이 나와 '추우니 몸을 잘 챙기라'고 했다"며 "미국이 그린란드를 위협하는 추가 조치를 섣불리 할 수 없도록 우리가 목소리를 계속 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시간여 동안 각자 서서 시위를 펼치던 옌스 씨와 브란트 씨는 귀가 직전에는 나란히 깃발을 들고 보란 듯 영사관 앞을 여러 번 행진하며 미국 측에 경고의 메시지를 발신했다.
이날 누크 시내 중심가 버스 정류장에는 미국의 미성년자 성착취범인 제프리 엡스타인과 젊은 시절 트럼프 대통령이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나토 예스, 페도(pedo·소아성애자) 노'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붙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현지 주민의 반감을 짐작케 했다.
ykhyun14@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