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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약가인하 반대하는 제약업계, 국민체감하는 혁신이 우선이다

by 스포츠조선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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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논리에 가려진 국민 건강권과 약가 부담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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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연구 제안이 시간 끌기용 명분 쌓기 돼선 안 돼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집단적인 행동에 나섰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를 비롯한 7개 주요 단체와 노동조합이 참여한 산업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약가 인하의 파급효과를 분석하기 위한 정부와 산업계 간의 공동연구를 공식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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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는 이번 정부 개편안이 강행될 경우 연구개발 투자 위축은 물론 필수의약품의 생산 중단과 일자리 감소 등 산업 전반의 붕괴가 우려된다며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이런 업계의 호소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그리 따뜻하지 않다. 업계가 내세우는 생존 논리 속에 정작 약의 주인인 국민의 고통과 건강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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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3년 만에 내놓은 이번 약가 제도 개편안의 핵심은 복제약 가격의 현실화다. 현재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평균 53.55% 수준인 복제약 가격을 40%대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복제약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돼 있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약값이 높게 유지되면 제약사는 손쉽게 수익을 낼 수 있지만 그 비용은 고스란히 건강보험 재정의 부담과 국민의 약값 부담으로 전가된다.

제약업계가 위기라고 말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은 매달 오르는 건강보험료와 병원비에 시름하고 있다. 업계가 주장하는 산업 붕괴라는 공포 마케팅이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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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비대위가 약가 인하 반대의 근거로 중동 사태와 같은 외부적 요인을 끌어들인 대목은 다소 당혹스럽다. 미국과 이란의 긴장 상태 등 국제적인 정세 불안이 산업에 영향을 줄 수는 있으나 이를 국내 약가 제도 개편과 직접적으로 연결해 붕괴를 운운하는 것은 과도한 비약으로 비칠 소지가 다분하다.

어려운 대외 여건 속에서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는 설명 역시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기업의 이윤 보호를 위한 수사로 들릴 뿐이다. 진정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고자 했다면 약가 인하라는 파고를 넘기 위해 스스로 어떤 뼈를 깎는 혁신을 준비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먼저 제시했어야 했다.

업계가 제안한 정부와의 공동연구 역시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약가 인하의 파급효과를 제대로 분석하자는 취지는 일리가 있으나 이미 제도 개편 논의가 상당 부분 진행된 시점에서 나온 제안이라는 점에서 시간 끌기 전략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우기 힘들다. 과거에도 대규모 약가 인하가 예고될 때마다 업계는 유사한 방식으로 대응하며 시행 시기를 늦춰왔다. 공동연구라는 명분 아래 논의를 공전시키는 동안 국민은 더 저렴하게 약을 구매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진정성 있는 공동연구가 되려면 산업의 이익 대변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국민에게 더 질 좋은 의약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 돼야 한다.

국산 전문의약품의 경쟁력을 높이고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는 업계의 주장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제약 산업은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성장의 과실이 기업의 곳간에만 머물고 국민의 의료비 경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산업의 존재 가치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필수의약품 생산 중단이나 일자리 감축을 볼모로 잡는 듯한 태도는 국민을 설득하기에 역부족이다. 오히려 약가 인하라는 위기를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아 복제약 위주의 영업 구조에서 벗어나 진정한 신약 개발 역량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 한국 제약 산업을 지탱해 온 업계가 보여줘야 할 진정한 품격이다.

제약업계는 이제 서명운동과 같은 집단행동을 넘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실질적인 혁신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부 역시 산업계의 우려를 경청하되 국민의 건강권 수호라는 대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약가는 단순히 기업의 매출 숫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약업계가 말하는 산업 발전의 궁극적인 목적지가 어디인지 스스로 자문해 볼 때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산업은 결코 지속 가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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