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월의 중반이다. 봄이 지척에 와 있다. 아직 아침, 저녁으로 부는 쌀쌀한 찬바람에 무뎌진 시간 감각. 그러나 겉옷의 가벼워짐은 계절 변화의 시작을 실감케 한다. 제대로 된 봄을 즐기기에 앞서 마지막 겨울의 즐거움은 느낄 수 있는 건 사계절 변화를 느끼는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의 특권이다. 봄의 초입, 겨울의 끝자락에 즐기는 맛과 멋의 시간. 아직 끝나지 않은 장흥의 마지막 겨울 이야기.
◇장흥 남포마을의 굴구이 연기가 옅어지는 건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사진제공=지엔씨21
한정판의 매력 '굴구이, 무산 곱창김'
"지금 아니면 구할 수 없습니다." 제철, 한정한이란 수식어는 단순한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장흥의 굴구이는 겨울의 마지막 맛으로 기억해도 좋을 만하다. 장흥군에서 굴구이는 남포마을에서 즐길 수 있다. 이곳의 굴구이 전문점은 이르면 3월 중순, 늦어도 3월 말까지만 운영한다. 굴구이는 굴찜과 다르다. 굽는 방식도 직화가 있고, 드럼통 위에 올려 그 열로 굽는 방식으로 나뉜다.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한 겨울 굴구이 연기로 가득한 남포마을. 굴구이 연기가 옅어지고 있으니 봄이 가까워졌음을 짐작케 한다. 굴구이 전문점에선 생굴을 비롯해 매생이국, 굴전 등 다양한 곁들임 음식도 맛볼 수 있다. 굴구이 전문점의 굴은 대부분 여수에서 공수된다. 굴은 한겨울이 제철이라지만, 자연산 굴의 경우 3월이 가장 맛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장흥의 남포마을에는 현지에서 채취한 자연산 굴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
◇남포마을의 소등섬 둘레길은 해변을 따라 데크형태로 조성, 편안하게 오갈 수 있다. 사진제공-지엔씨21
남포마을 인근에는 소등섬이 있다. 작은 무인도로, 과거 배를 타고 나간 사람의 무사귀한을 기원했던 곳이다. 소등섬은 사진찍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일출 명소다. 소등섬은 모세의 기적을 체험하는 신비로운 섬으로 하루 두세 차례 썰물 때가 되면 바닷물이 빠지고 섬으로 이어진 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를 가로질러 나타난 길로 소등섬까지 걸어갈 수 있다. 남포마을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가 촬영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영화 '축제'는 장흥군 회진면 출신의 작가 고 이청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소등섬 주변으로는 바다를 낀 데크 형태의 둘레길도 마련되어 있어, 굴구이를 즐긴 뒤 가벼운 산책으로 다음 먹거리를 준비할 수 있다.
장흥은 김이 유명한 고장이다. 일반 김이 아닌 무산김이 유명하다. 무산김은 유기산/무기산(염산)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햇볕과 바닷물에 김발을 노출하는 친환경 방식으로 생산한 김을 말한다. 김 종류에 따라 이름도 다양하지만, 구불구불한 김을 활용해 만든 곱창김은 무산 김 중에서도 명품에 속한다. 맛과 식감도 뛰어나지만, 곱창김을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은 건 매년 10월부터 12월까지 사이 짧은 기간 한정적으로 생산이 된다는 점에서 가치를 높인다.
◇무산김은 장흥의 9미 중 하나다. 관산농협은 무산김을 활용, 곱창김을 비롯해 형태의 무산김 세트를 선보였다.
제대로 된 장흥 무산김을 구매하기 위해선 관산농협으로 향하면 된다. 관산농협은 곱창김을 비롯해 다양한 무산김을 조합한 무산김 세트를 판매 중이다. 지역 수산식품기업 항흥무산김이 제품 생산을 주도한다. 김은 최근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식자재다. 최근 블루푸드로 불리고 있고, 해양수산부는 김의 세계적 식품으로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관산농협은 무산김 말고도 쌀가루를 활용한 빵을 제조, 판매한다. 글루텐이 없어 소화가 편하고, 밀가루빵보다 부드럽고 촉촉한 게 특징이다. 오형주 관산농협조합장은 "무산김과 쌀빵을 통해 장흥의 맛을 알리고 있다"며 "전국 농협의 하나로마트 판매를 목표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랜 지역 명물 '장흥삼합과 청태전'
장흥의 먹거리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장흥삼합이다. 장흥삼합은 키조개 관자와 표고버섯, 한우가 만들어 낸 장흥만의 맛이다. 키조개 관자의 부드러움과 표고버섯의 쫄깃함, 한우의 감칠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따로 먹을 때보다 함께 먹으면 각각의 맛이 조화를 이루며 오감을 깨운다. 장흥의 정남진 토요시장에 장흥삼합을 하는 집이 많다. 소고기는 별도구매를 해서 음식점에서 삼합 세팅 비용을 별도로 지불하고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선한 재료인 만큼 너무 익히지 않게 구워서 쌈장이나 양념채소에 곁들여 먹으면 강하지 않으면서도 넉넉한 풍미가 입안 가득 느껴진다. 키조개 관자와 표고버섯, 한우의 조합이라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장흥에서 자고나란 키조개와 표고버섯, 한우의 깊은 맛을 흉내내기란 쉽지 않다.
장흥은 청태전의 고향이기도 하다. 청태전은 찻잎을 발효시긴 차를 말한다. 첫 한 모금은 녹차의 맛이지만 목뒤로 넘길수록 특유의 향은 차의 풍미를 더한다. 청태전은 녹찻잎을 찐 뒤 뭉쳐서 엽전 모양으로 꿰어 숙성하며 말린다. 삼국시대부터 전해오는 한국 교우의 수제 전통차다.
차를 마시기 위해선 약불에 청태전을 한번 구워 잡내를 없앤 뒤 물을 부어 먹거나, 주전자에 넣어 끓여 먹으면 된다. 청태전은 만드는 방식이 복잡해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 대중적이진 않지만, 차를 아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마시고 싶은 차로 꼽는다. 청태전을 마시는 건 오래전부터 내려온 지역 특유의 손맛을 마시는 것과 같다.
'맛을 눈으로 즐긴다' 보림사, 장흥 126 타워
장흥에는 보림사가 있다.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동양의 3보림'으로 불린다. 사찰 경내에는 국보로 지정된 석탑과 석등,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로 지정된 동부도, 서부도, 보조선사 창성탑 및 창성탑비 등이 있다. 보림사 뒤편에는 2009년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어울림상을 수상한 비자림 숲길이 있다. 400년생 비자나무 600여 그루가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비자림은 방대한 산림욕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봄에는 보림사 주변의 야생차밭이 인상적이다. 보성 등 주요 녹차밭처럼 근사한 맛이 없고, 볼품없이 여기저가 자리 잡은 차나무지만 그 찻잎의 맛은 일품이다. 보림사에선 5월~6월 무렵 청태전을 만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장흥 126타워는 장흥의 산과 들,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동안 맛봤던 식자재를 떠올리며 주변을 살피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장흥126타워는 광화문의 정남쪽에 있다. 강원에 정동진이 있다면, 장흥엔 정남진이 있는 셈이다. 장흥 126 타워의 10층 전망대에 오르면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득량도와 소록도, 연홍도, 거금도, 금당도 등 남해안에 흩어진 섬들을 조망할 수 있다. 8층은 소통의 시간, 7층은 통일기차의 꿈, 6층은 하나된 마음, 우리의 협력, 5층은 통일 더 큰 기회, 4층은 평화의 날, 3층의 화해의 바람 등을 주제로 통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즐길거리가 많다. 장흥 126 타워 앞 광장에는 안중근 동상이 세워져 있다. 정남진에서 수직으로 선을 그어 맞닿는 하얼빈. 그 역사의 시간도 되새겨 볼 수 있다.
아쉬움 없는 장흥 여행의 마침표를 찍고 싶다면 빠삐용집(ZIP)을 방문하는 것도 좋다. 빠삐용집은 옛 장흥교도소를 문화예술공간으로 바꿔 재탄생한 곳이다. 현재 개방된 실물 교도소로 유일한 곳으로 K-드라마와 영화의 주요 촬영지로 이용되고 있다. 교도소로서 오래된 시설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면서도 남녀노소 누구나 방문해 즐길 수 있는 무장애관광지로 손색이 없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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