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스포츠조선 박재만 기자] 약속보다는 승부가 먼저였다. 초구 슬로우 커브를 던져 맞대결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던 임찬규는 거짓말쟁이가 됐지만 그만큼 승부의 세계는 냉정했다.
8년을 함께했던 동료가 이제는 마운드와 타석에서 마주 섰다. 임찬규와 김현수의 첫 맞대결은 경기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스프링캠프 당시 '초구는 무조건 슬로우 커브'라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30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 LG의 경기. 8년 동안 두 번의 우승을 함께했던 임찬규와 김현수는 올 시즌 첫 맞대결을 펼쳤다.
시즌 개막 전 임찬규는 방송 인터뷰에서 김현수와 맞대결 관련 질문에 '초구는 무조건 슬로우 커브'라고 선언했다. 김현수도 '찬규야 초구는 무조건 커브 던져'라고 인터뷰하며 두 사람의 첫 맞대결은 기대를 모았다.
드디어 성사된 LG 선발 임찬규와 KT 김현수의 맞대결. 1회 빠르게 아웃카운트 2개를 잡은 선발 임찬규는 첫 타석에 들어선 김현수와 승부에 집중했다. 과연 임찬규가 초구 커브 약속을 지킬지 기대를 모았던 순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임찬규의 초구는 146km 직구였다. 약속했던 커브에 타이밍을 맞췄던 김현수는 직구가 들어오자 배트를 내지 않았다. 약속이 깨진 순간 김현수는 마운드를 바라봤지만 임찬규는 승부에 집중했다. 이어진 커브, 슬라이더 다양한 구종 속에서도 김현수는 특유의 선구안으로 풀카운트 승부 끝 볼넷을 골라내며 첫 타석에서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이 장면은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사이지만, 유니폼이 달라진 순간 더 이상 배려는 없었다. 약속보다 중요한 것은 팀의 승리였다.
첫 대결에서 김현수에게 볼넷을 허용한 임찬규는 안타를 맞은 것보다 더 크게 아쉬워했다. 이어진 두 번째 타석에서는 임찬규가 주무기 커브로 범타를 유도하며 설욕에 성공했다. 서로의 수를 읽고 다시 그 수를 뒤집는 과정은 단순한 승부 이상의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세 번째 타석이던 5회 2사 1루 1점 차 타이트한 상황에서 김현수는 임찬규의 직구를 받아쳐 안타를 생산했다. 김현수의 이 안타는 KT가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날 맞대결 결과는 김현수의 판정승이었다. 볼넷과 안타를 기록하며 임찬규와 세 번의 맞대결에서 두 번 출루했다. 임찬규는 결정적인 순간 제구 난조로 아쉬움을 남겼다. 5회 2사 이후 급격히 흔들리며 동점을 허용한 장면은 경기 흐름을 바꾸는 분기점이 됐다.
이날 경기는 접전 끝 LG 트윈스가 6-5 1점 차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LG는 경기 후반 집중력을 발휘해 역전에 성공했고 김진수, 함덕주가 1점 차 리드를 끝까지 지켜내며 3연패에서 탈출했다.
결과만 보면 LG의 승리였지만, 이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단연 임찬규와 김현수 두 선수의 맞대결이었다. 초구 커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 두 사람의 플레이는 빛났다.
동료에서 적으로, 그리고 다시 서로를 인정하는 경쟁자로 만난 임찬규와 김현수의 첫 대결은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는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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