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이른바 '국뽕'이 차오르던 순간

[하이브 아메리카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방탄소년단 멕시코시티 공연을 앞둔 7일(현지시간) 오후 공연장 주변 도로가 막히고 있다. 2026.05.07.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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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7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 에스타디오 GNP 세구로스에서 열린 BTS 콘서트에서 팬들이 무대를 보고 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7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 에스타디오 GNP 세구로스 주변에서 BTS 팬들이 공연 후 서성이고 있다. 2026.05.07.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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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시간) 오후 방탄소년단(BTS)을 만나러 가는 길에 떠오른 노래는 비틀스 마지막 앨범 수록곡 '길고도 구불구불한 길'(The long and winding road)이었다. 곡 내용처럼 '그대가 기다리는 문'(Your door)으로 가기까지는 만만치 않은 고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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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 무렵 멕시코 교통체증은 악명이 높은 데다 공연장 주변에선 교통통제가 이뤄지고 있어 예상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걸렸다. 평소면 30분이 걸릴 길이 2시간 가까이 걸렸다. 물어물어 간신히 공연장 입구를 찾았지만, 보안 문제 때문에 여러 번의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의심과 짜증이 솟구치는 가운데 공연이 시작할 즈음에야 가까스로 공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공연장 '에스타디오 GNP 세구로스'는 신세계였다. 거개가 10대와 20대 여성인 관객들은 BTS 멤버들의 이름을 부르며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멕시코는 이제 여름으로 접어들었지만, 해발 2240m의 높은 산에 위치한 분지라, 저녁에는 선선했다. 시원한 바람이 이들의 열기를 살짝 식혀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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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펼쳐진 스타디움은 공항 근처였다. 제법 많은 비행기가 날아다녔다. 그들이 그리는 자취인 '비행운'의 흔적도 서울 하늘보다는 가깝게 보였다. 마치 손만 뻗으면 닿을 듯이. 맑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운은 곧 사라지지만, 때론 격렬한 감정적 잔상을 남기곤 하는데, 이날 BTS의 공연이 그랬다.

통상 공연은 시간의 예술이라, 시간이 흘러가며 사라진다. 실제 많은 공연이 그렇다. 그러나 어떤 공연들은 우주의 중력과 같은 절대적 힘인 '시간'을 거스르고, 마음속에 봉인되곤 하는데, 이날 '방탄'의 공연이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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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기자는 BTS의 팬이 아닐뿐더러 '방탄'의 노래도 거의 모른다. 일부 빌보드 1위를 한,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그런 몇 곡 정도만 흥얼거릴 수 있는 '방탄 알못'(BTS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중의 한명일 뿐이다.

하지만 관객들이 뿜어내는 기세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내지르는 소리에 약한 고막은 금세 고장 났다. 팬들은 웃고, 즐기기도 했지만, 울며 서로를 끌어안기도 했다. 롤러코스터를 탄 그들의 감정은 격렬했다. 그 젊음이 내뿜는 에너지는 분명, 부담스러운 부분이었다. 몇 곡만 듣고,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곧 이상야릇한 감정이 발을 붙들어 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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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지 않겠지만 필자의 시야에서 한국인은 나 혼자인 듯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리지널' 한국인인 나만 한국어를 못했다. 6만5천여명의 팬은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한국말로 된 랩 가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 했다. 멕시코인에 포위된 채, 모든 멕시코인이 한국말을 하는데, 한국인인 나만 그 가사를 따라 하는 것은 물론, 알아듣지도 못했다.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에 둘러싸인 채 정작 한국인인 나만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험은, 뭔가 비현실적이었다.

현대적인 우리 노랫말을, 게다가 '아리랑'처럼 오래전부터 우리가 불러온 민요를, 수많은 멕시코 청춘이 따라 하는 장면은 뭔가 이상한 '부심'을 불러일으켰다. 시쳇말로 '국뽕이 차오르는 느낌'이랄까.

그런 경험 속에서 결국 공연을 거의 완주했다. 마지막 곡을 앞두고, 옆자리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자리를 슬며시 빠져나갔다. 이 많은 인파가 '우버'를 타고 집에 갈 텐데, 이미 늦은 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옆에서 보니 일부 관객들이 벌써 뛰고 있었다. 공연장은 멕시코시티 동쪽 끝에 있었고, 집은 서쪽 끝에 있었다. '이러다 오늘 집에 못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싫었지만 나도 뛰었다. 그런데, 가다 보니 팬들이 뛰는 방향이 조금 달랐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우버를 탈 수 있는 도로변이 아니었다. BTS의 공식 굿즈를 파는 '굿즈 샵'이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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