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 '조성민 자살 비극' 일제 보도

기사입력 2013-01-06 12:10


조성민은 지난 98년 요미우리 시절 올스타전에 출전해 팔꿈치 인대를 다치면서 운명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2000년 5월 1군 복귀전이던 야쿠르트전에 등판한 조성민. 스포츠조선 DB

일본 언론이 전 요미우리 투수였던 조성민(40)의 비극적인 사망 소식을 일제히 전하며 촉망받던 스타의 몰락을 추모했다.

일본 지지통신과 등은 6일 오전 한국 매체의 보도를 인용해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했던 조성민이 6일 새벽 서울 자택에서 목을 매 사망했다"고 전했다. 일본 매체들은 조성민이 일본 최고 명문팀이었던 요미우리에서 촉망받는 에이스로 성장하다 팔꿈치 부상으로 퇴단했으며, 한국에서 선수와 코치를 거쳤다는 이력을 자세히 소개했다. 특히, 한국 최고의 인기 여배우였던 전처 고(故) 최진실도 이혼 후 자살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비록 수치상으로 나타난 성적은 대단하지 못했으나 조성민은 마치 명멸하는 혜성처럼 일본 야구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일본 진출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1996년 일본 최고 명문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한 조성민은 계약금 1억5000만엔(약 18억원)에 연봉 1200만엔(약 1억4000만원) 등 뛰어난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계약 기간은 무려 8년. 그만큼 요미우리가 조성민의 스타성에 주목한 것이다. 뛰어난 야구 실력 뿐만 아니라 큰 키(1m94)에 잘생긴 외모로 팬들의 인기를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었다.

입단 첫 해와 이듬해 2군에 머물던 조성민은 97년 후반기부터 1군 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조성민이 가장 밝게 빛을 발한 것은 98시즌 전반기까지 였다. 올스타 휴식기 이전까지 7승6패, 평균자책점 2.75을 기록했고, 6번의 완투와 3번의 완봉승으로 '거인군단'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조성민은 짧게 빛났다 사라지는 혜성이었다. 올스타전에서 오른쪽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당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수술 이후 꾸준히 재기를 했고, 2000년 한국 최고의 톱스타 최진실과 결혼하며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있었으나 평탄하지 못한 가정사로 인해 야구에 집중하지 못하면서 결국 2002년 10월 요미우리에서 퇴단하고 말았다.

이후 조성민은 한화에서 다시 현역에 돌아와 2005~2006시즌 마운드에 섰으나 이전만큼의 기량은 나오지 않았다. 이후 해설자와 두산 재활군 코치(2012)를 거쳤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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