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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두 팀은 성숙했다. 극단적인 대립이 아닌 '동업자 정신'이 녹아 있었다.
그리고 서로 신경전을 벌이며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다. 하지만 커다란 불상사는 없었다.
신경전이 벌어지자, 오재원은 이미 그 정황을 알고 있었다. 화를 내는 대신 "난 보지 않았다"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벤치클리어링 당시 오재원의 앞을 가로막고 신경전을 미리 차단한 SK 정근우는 4일 경기 전 "오재원이 '형 저 아시잖아요. 어깨를 닫는 동작을 한 것 뿐이에요. 절대 그러지 않았어요'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나도 '그래, 그래'라고 진정시켰다"고 밝혔다.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이)승엽이 형 흉내를 냈는데, 이미지 좀 좋아졌어요"라고 기자들에게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삼성과 KIA의 벤치 클리어링 도중 이승엽은 서재응을 진정시키며 불상사를 미리 차단했었다.
하루가 지났다. SK 이만수 감독은 "거기(사인훔치기 논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게 적절할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더 이상 논란을 확대해도 별다른 소득이 없는 게 사실이다. 당사자들만 위축될 뿐이다. 시시비비를 엄중하게 따질 수 없는 사안이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기 때문이다. 윤희상은 '헤드샷'을 날렸다는 이유로, 오재원은 '사인 훔치기를 했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경기를 치르다 보면 이런 충돌이 있을 수 있다.
당시 동영상을 보면 SK가 충분히 오해할 수 있다. 오재원이 어깨를 닫을 때 시선이 3루와 자기 어깨쪽을 왔다갔다 했다. 때문에 오재원이 부적절한 행동을 한다고 판단한 윤희상은 그대로 머리쪽으로 빈볼을 던졌다. 윤희상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SK의 한 관계자는 "3루쪽에서 보면 윤희상이 투구할 때 그립 잡는 것을 미리 볼 수 있다. 이번 논란은 포수의 사인 훔치기가 아니라 투수 그립을 먼저 보고 알려주느냐, 아니냐다. 하지만 윤희상도 이런 약점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두산도 사인 훔치기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했다. 두산 김진욱 감독은 "두산은 절대 사인 훔치기를 하지 않는다. 단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사실 사인훔치기 논란은 매 시즌 빈번하게 발생한다. 오해의 소지도 많은 게 사실"이라며 "타자에 따라 다르지만, 오재원이나 민병헌의 경우 타석에서 여러가지 움직임을 한다. 상황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주의를 주고 있다"고 했다. 오재원의 시선 처리 논란에 대해서도 "오재원의 경우 상황에 맞는 타격을 하기 위해서 타석에서 시선이 자신의 어깨와 3루, 유격수 위치를 왔다갔다 한다. 그래서 나온 오해"라고 했다.
이날 두산은 오재원을 스타팅 라인업에서 제외했다. 김 감독은 "괜히 오해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재원을 제외한 것은 어제 일 때문이 아니다. SK 레이예스가 좌완투수이기 때문에 왼손타자 오재원을 제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산은 이날 김현수를 제외하고 모두 오른손 타자를 선발 라인업에 포함시켰다.
사인 훔치기 논란은 정확한 판정이 내려질 수 없는 사안이다. 논란이 일어나면 결국 상처받는 것은 두 팀이다. 손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
SK와 두산은 충분히 이 점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날 경기 전 두산 조원우 주루코치와 SK 조웅천 투수코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두산 황병일 수석코치는 SK 덕아웃으로 찾아와 이광근 수석코치를 찾아와 전날 사건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논란을 원만하게 풀기 위한 두 팀의 움직임.
SK는 전날 사건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했다. 두산은 오해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을 했지만, SK의 신경을 자극하는 행동을 자제했다. 확실히 두 팀의 동업자 정신은 인상적이었다. 인천=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