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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두산 홍성흔은 부쩍 말이 없어졌다. 워낙 유창한 입담을 자랑하는 그였다.
FA 자격을 얻은 홍성흔은 올해 롯데에서 두산으로 이적했다. 4년간 31억원을 받았다. 그리고 두산은 지난해 선발과 중간계투를 오가며 활약한 김승회를 보상선수로 롯데에 내줬다.
마지막으로 떨어져 보이는 팀 공헌도다. 홍성흔은 올해 2할8푼5리, 11홈런, 54타점의 준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승부처에서 병살타(11개)가 많다. 팀내에서 가장 많고, 리그에서 5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팀 공헌도에 대해 NC 이호준과 비교되기도 한다. SK에서 FA자격을 얻어 NC로 이적한 이호준은 2할8푼4리, 12홈런, 64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득점권 타율이 무려 3할9푼3리나 된다. 홍성흔의 득점권 타율은 2할6푼3리다.
이런 복합적인 요인 때문에 홍성흔에게 부정적인 시선이 상당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지난해 두산은 타선이 좋지 않았다. 허약하고 응집력이 뛰어나지 않은 타격 때문에 '두점 베어스'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올해를 보자. 팀타율이 무려 2할8푼9리, 리그 1위다. 479득점, 역시 1위다. 도루도 리그 최고인 128개나 된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두산의 타격 사이클이 거의 기복이 없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타격을 믿을 수 없는 게 상식이다. 사이클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두산은 주전과 백업을 가리지 않는 두터운 야수진 덕분에 너무나 꾸준한 타격 사이클을 시즌 초반부터 계속 이어오고 있다.
무엇이 변했을까. 지난해 부상자가 많았다. 대거 복귀했다. 그리고 베테랑들의 부활과 유망주들의 포텐셜이 동시에 터지기 시작했다. 그 시발점은 미야자키 전지훈련이었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 두산의 전지훈련은 살벌한 주전경쟁의 장이었다. 경쟁에 살아남은 주전들이 맹활약했고, 동시에 기회를 노리는 백업요원들이 칼을 갈았다.
지난해 두산 타선의 가장 큰 문제는 팀 케미스트리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선수단 분위기를 강력하게 이끌어가는 리더가 없다는 것이 치명타였다.
올해 두산 타선의 변신에 가장 중요한 점은 경쟁의 부작용을 경쟁의 선순환으로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기본적인 팀의 화학적 결합이 어그러지면 강팀이 될 수 없다. 보이진 않지만 모든 사령탑들이 꼽는 기본적이면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3연패에 도전하는 삼성이나 올해 환골탈태한 LG만 봐도 알 수 있다. 삼성은 이승엽과 배영수라는 베테랑이 투타를 이끌고 있다. 모두 알다시피 LG는 이병규 박용택 류택현 같은 베테랑들이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 포지션 경쟁이 치열할 수록 백업으로 밀린 선수들의 불만은 커질 수 있다. 그런 작은 불만이 쌓이면 팀 전력을 보이지 않게 좀먹는다. 위험수준에 도달하면 한 해 성적 자체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보이지 않는 괴물로 변하기도 한다. 두산으로서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그런 불만을 최소화하고 경쟁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너무나 필요했다. 비단 올 시즌 뿐만 아니라 팀의 미래를 위해서도 더욱 그랬다.
지난해 투수진에는 김선우라는 좋은 리더가 있었지만, 야수진에는 없었다. 홍성흔을 강력하게 원했던 이유다. 두산의 한 관계자는 "김승회를 놓친 것은 정말 아쉽다. 하지만 우리 팀에 가장 시급하면서도 중요한 것은 끈끈한 팀조직력을 만들 수 있는 리더였다. 좋은 야수들이 많아 극심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팀 사정상 홍성흔의 영입은 필수조건이었다"고 했다.
두산의 올해 타격을 보면 폭발력과 꾸준함, 그리고 응집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승부처에서 좋은 타격이 나온다. 뒷심도 강하다. 한마디로 완벽하다. 홍성흔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그는 단순히 덕아웃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15시즌째를 맞고 있는 그는 승부의 맥을 정확히 짚는다. 급박한 승부처에 어김없이 "이번 회만 견디면 된다", "팀 타격에 집중하자. 여기서 1점만 더 내면 승기를 굳힌다"와 같은 명료하면서 구체적인 명제를 꺼내든다. 이런 강력한 리더십때문에 두산 타자들은 승부처에서 집중력을 배가시키며 타석에 선다. 두산의 타격이 꾸준함과 응집력을 갖춘 가장 큰 이유다. 백업요원들이 별다른 불만없이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의 기량을 120% 그라운드에 쏟는 강력한 요인이기도 하다. 흔히 코칭스태프가 할 수 없는, 팀의 고참이 해야할 역할이 있다고 한다. 특히 두산이 꼭 필요했던 부분, 홍성흔은 200%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홍성흔 개인의 성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런 리더의 역할이 불완전한 것도 사실이다.
그는 병살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베테랑도 떨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4월3일 잠실 SK전 1회 1사 만루상황에서 어이없는 체크스윙으로 예기치 않은 병살타를 친 이후부터다. 게다가 시즌 전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바꾸려면 좋은 활약을 펼쳐야 한다는 부담감이 결합됐다.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만 엄청난 압박감은 알게 모르게 홍성흔의 타격에 악영향을 미쳤다. 그는 시즌 중반 코칭스태프에게 스스로 "주전 라인업에서 빼셔도 됩니다. 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득점 찬스에서 스윙이 여전히 크다. 좀 더 간결한 스윙을 해야하는 거 아닌가'라는 전문가들의 비판도 알고 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두산 김진욱 감독과 황병일 수석코치는 "홍성흔 스스로가 밀어치기도 하고, 스윙을 작게 하기 위해서 오른 어깨를 붙이기도 하며 별별 시도를 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코칭스태프까지 한마디 보태는 것은 확실히 마이너스가 된다"고 했다. 가까이에서 홍성흔의 모습을 지켜본 코칭스태프의 정확한 판단이다.
그는 최근 매일 자신의 방에서 108배를 올린다. 자신의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떨쳐버려야만 하는 득점권 찬스에 대한 엄청난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확실히 홍성흔에 대한 비판은 너무 지나치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