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히어로즈 2군은 저 멀리 전남 강진에 있다. 남해 바다 앞에 펼쳐진 그라운드, 주변엔 허허벌판이다. 야구밖에 할 수 없는 환경. 과거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떠났던 강진, 넥센 선수들 역시 2군행을 '유배'라고 말할 정도다.
내년부터는 가까운 경기도 화성으로 옮기게 됐지만, 강진 2군은 넥센을 탄탄히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넥센의 우완투수 문성현도 올시즌 1군과 2군을 오갔다. 2군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시즌 전 준비부터 엉망이었다. 스프링캠프 때도 많은 공을 던지지 못했다. 염경엽 감독의 시즌 구상 속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불펜투수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출발부터 좋지 않았다. 4사구로 주자가 쌓이고 맞는 패턴이 계속 됐다. 10이닝 16실점(14자책). 올시즌 문성현의 구원등판 기록이다.
그런 그에게 7월 31일 처음으로 선발 기회가 왔다. 사실 2군에서 문성현은 보직이 애매했다. 구원진에 과부하가 걸리자 중간계투로 1군 승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1군 선발진이 헐거워지자 이번엔 선발로 전환할 준비를 했다. 그러다 1군에 올라온 뒤엔 다시 불펜으로 시작했다.
선발진의 '플랜B' 였기에 겪을 수밖에 없던 일. 하지만 전반기 막판 선발로 준비한 게 힘이 됐을까. 문성현은 선발 첫 경기부터 5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이후 그의 보직은 계속 선발. 4선발 체제로 개편된 넥센의 후반기 선전을 이끈 주인공이었다. 선발로 나선 10경기서 5승3패 평균자책점 3.00(54이닝 19실점(18자책))을 수확했다.
이젠 어엿한 포스트시즌 선발투수다. 4차전 등판이 예정돼 있다. 문성현은 "시즌 전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설레는 건 있는데 긴장되거나 떨리는 부분은 없다. 못했다 올라와서 그런지 마음이 편하다"며 웃었다.
2013 프로야구 넥센과 한화의 프로야구 경기가 31일 목동구장에서 열렸다. 넥센 문성현이 선발 등판 한화 타선을 상대로 역투를 하고 있다. 문성현은 올시즌 첫 선발 출격이다. 목동=조병관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2013.07.31/
사실 지난해에도 마음의 짐이 있었다. 문성현은 지난해 4강 싸움이 한창일 때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가면서 팀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 그는 "사실 정호형이 장난으로 '너 때문에 4강 못 갔다'고 하더라. 올해는 작년에 못한 걸 해내겠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말했다.
2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문성현은 "작년에도 그렇고, 올해에도 강진에서 참 많이 걸었다. 혼자 계속 걷다 보면, 스트레스도 없어지더라. 그래도 언젠간 기회가 한 번 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반드시 잡아야 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털어놨다. 차디찬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계속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
지난 7월 마지막으로 1군에 올라왔을 땐, 모자 안쪽 챙에 '정신 차려!'란 문구를 적었다. 문성현은 마운드에서 긴장이 될 때마다 모자챙을 만지곤 한다.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는 것도 긴장을 풀기 위한 동작이다.
문성현은 "마운드에서 집중하고 던지다가도 약한 타자를 만나면 집중력이 풀려 볼넷을 주고, 그러다 또 맞고 그런 패턴이 계속 됐다. 그래서 이번엔 그러지 말자고 문구를 적었다"며 "또 몸이 조금씩 좋아지니까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2B, 3B 몰려도 볼넷 생각을 안하게 된다. 자신감이 가장 큰 무기란 걸 제대로 깨달았다"고 했다.
뒤늦게 얻은 깨달음, 포스트시즌 마운드에서도 계속 이어가는 게 목표다. 문성현은 "누구랑 붙던 내 공을 던지면 된다. 잠실구장에서 던지게 됐는데 오히려 잘 됐다. 구장도 크고, 관중도 많으면 난 신이 난다. 재밌을 것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