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PO] 대참사가 될 뻔한 니퍼트의 '박병호 포비아'

최종수정 2013-10-15 06:27

2013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5차전 넥센과 두산의 경기가 14일 목동구장에서 열렸다. 9회말 2사 1,2루 넥센 박병호가 두산 니퍼트의 투구를 받아쳐 중월 동점 3점홈런을 날렸다. 홈런 허용 후 아쉬워하는 니퍼트.
목동=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3.10.14/

'포비아(phobia)'.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공포증을 뜻한다. 과거의 경험에 따른 심리적 현상이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편안하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막상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런 대상이나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과거의 공포가 되살아나면서 자꾸만 위축되고, 결국 엉뚱한 행동을 하고 만다.

두산 에이스인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32)에게도 그런 공포증이 있었다. 다름 아닌 넥센 4번타자 박병호에 대한 공포증이다. 이를테면, '박병호 포비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니퍼트는 박병호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니퍼트 개인 뿐만 아니라 두산이 어마어마한 상처를 입고 말았다.

14일 오후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두산의 준플레이오프 마지막 5차전. 시리즈 전적 2패로 벼랑 끝에 몰렸던 두산이 3, 4차전을 따내며 전적을 2승2패, 원점으로 돌린 상황에서 펼쳐진 경기다. 흐름은 오히려 두산쪽으로 흘렀다. 선발 유희관이 7이닝 1안타 9삼진 무실점의 빼어난 호투를 펼쳤고, 4회초 이원석이 3점 홈런을 터트리면서 8회까지 두산이 3-0으로 앞서나갔다. 넥센의 9회말,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만 2실점 이하로 막아내면 두산이 플레이오프에 오르는 상황이다.

승리의 9부 능선까지 오른 상황. 그러나 넥센의 반격이 매섭게 이어졌다. 넥센은 8회 부터 마운드에 오른 변진수를 상대로 대타 문우람과 1번 서건창이 연속 안타를 치며 무사 1, 2루 기회를 만들었다.

그러자 두산 김진욱 감독은 마무리로 12일 4차전에서도 2이닝을 던졌던 니퍼트를 깜짝 마무리로 호출했다. 플레이오프의 의지가 담긴 파격적인 투수 기용이다. 이 변칙적인 투수 기용속에는 '반드시 플레이오프에 오른다'는 의지와 더불어 니퍼트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무사 1, 2루의 극심한 압박감 속에서 마운드에 오른 니퍼트는 일단 2명의 타자는 잘 잡아냈다. 첫 상대로 나온 대타 장기영과 후속 이택근을 모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4차전 등판 이후 하루 밖에 못 쉰 니퍼트의 직구 구속은 여전히 140㎞대 후반까지 나왔다. 그러나 피로에 의한 데미지는 분명 남아있었다. 간간히 스트라이크존에서 터무니없이 뜨는 공을 던지는 모습에서 니퍼트의 피로감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도 어쨌든 니퍼트는 2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제 1명의 타자만 처리하면 경기는 끝난다. 그런데 하필 그 상대가 박병호였다. 니퍼트로서는 지난 8일에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1차전의 악몽을 안떠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선발로 나선 니퍼트는 0-0이던 1회말 2사 3루에서 박병호에게 2점 홈런을 얻어맞고 말았다. 2S의 유리한 볼카운트를 만들어놓고도 결정구를 던지지 못한 결과였다. 3구 볼에 이어 박병호가 연속 3개의 파울타구를 만들어내며 니퍼트를 물고 늘어지자 니퍼트는 7구째에 볼을 던지며 흔들렸다. 결국 박병호는 니퍼트가 던진 8구째 직구를 통타해 중월 2점 홈런을 날렸다.


하필 이 6일 전의 악몽이 니퍼트의 집중력을 뒤흔들고 말았다. 다시 박병호와 만난 니퍼트는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했다. 초구와 2구 모두 볼. 볼카운트가 2B로 불리해지자 어쩔 수 없이 가장 자신있는 148㎞의 직구를 던졌다.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간 공. 하지만 코스가 나빴다. 박병호가 가장 좋아하는 바깥쪽 높은 코스.

박병호에게 이런 공을 던지는 것은 실투나 마찬가지다. 결국 박병호는 이 공을 비거리 125m짜리 대형 중월 3점 홈런으로 만들었다. 3-3 동점을 만들며 두산의 플레이오프 진출 희망에 잠시 제동을 건 회심의 일격. 니퍼트의 '박병호 공포증'이 재현된 것이다.

다행히 두산은 연장 13회초 대타 최준석의 홈런 등 타선이 폭발해 플레이오프 티켓을 따냈다. 그러나 니퍼트와 두산 입장에서는 오래 기억에 남을 공포스러운 순간이었다.


목동=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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