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바닥난 내야, 두산은 허경민을 단련시키고 있었다

기사입력 2013-10-29 11:25



"경민아, 지금 떨고 있어라."

두산 황병일 수석코치는 포스트시즌 내내 내야수 허경민에게 이런 주문을 했다. '떨어라'는 긴장하고 준비하고 있으란 말이었다. 언제나 투입될 수 있도록 상황을 가정하고 준비하도록 허경민을 단련시킨 것이다.

허경민은 두산 내야수 중 공수주에서 재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팀내 평가가 좋다. 올시즌 75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타율 2할9푼8리 1홈런 25타점 14도루를 기록했다. 출전 경기수는 지난해(92경기)보다 줄었지만, 타석은 173타석에서 276타석으로 급등했다. 주전멤버로 뛴 경기가 많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포스트시즌 들어서는 다시 벤치를 지키게 됐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2번-2루수로 선발출전했지만, 두 타석만에 오재원으로 교체됐다. 5회까지가 그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허경민에겐 다시 주전 기회가 오지 않았다.

두산 벤치는 큰 경기에서 경험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험부족으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결국 몸상태가 회복된 오재원을 2루수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허경민의 역할은 대주자요원에 한정됐다. 발이 느린 최준석 홍성흔 오재일 대신 대주자로 투입됐다 곧바로 대수비로 교체됐다. 수비 기회도 오지 않았다.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대수비로 8,9회 2이닝을 책임진 게 처음이었다.

하지만 황병일 수석의 떨고 있으란 주문은 4차전에서 빛을 발했다. 두산 내야진은 바닥을 드러내는 듯 했다. 옆구리 통증을 느낀 이원석, 햄스트링 부상을 입은 오재원까지 두 자리가 한꺼번에 비었다. 김재호가 다시 경기에 나서기 시작했지만, 내야 한 자리 보강이 필요했다. 결국 마지막 남은 내야수 허경민이 경기에 들어가게 됐다.


두산과 삼성의 2013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이 28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다. 4회말 2사 두산 허경민이 좌전안타로 진루하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3.10.28/
사실 이원석과 오재원이 부상을 입자, 준플레이오프부터 혈전을 치른 두산에 '한계가 오고 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야 자원이 바닥난 것을 예로 들면서, 경기 운용에 애를 먹을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허경민은 준비된 자원이었다. 황병일 수석은 준플레이오프 1차전 이후 모처럼 선발출전한 허경민에게 "다 떨었지? 이제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벤치에서 수없이 이미지트레이닝한 걸 실전에서 보여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8번-3루수로 선발출전한 허경민은 3타수 2안타로 펄펄 날았다. 4회와 7회 안타를 치고 나가 3루까지 도달했지만, 후속타 불발로 득점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하지만 분명 신선한 활약이었다. 두산 내야에 위기가 닥쳤다는 모두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펄펄 날았다.

경기 후 허경민은 "준플레이오프 때가 더 떨렸던 것 같다.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긴장감보다는 책임감이 더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날 대수비로 나가 충분히 '느낌'을 알았다.

두산 벤치는 전날 3차전에서 허경민에게 2이닝을 맡겼다. 투입 직후 병살플레이를 만들어내는 등 4차전 선발에 대한 기대감을 안겼다.

또한 허경민을 8번-3루수로 배치한 건 첫 선발출전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함이었다. 허경민은 2루수로 많이 뛰었지만, 내야 전 포지션이 가능한 인재다. 함께 내야를 구성하는 김재호와 비교해 좌우 풋워크가 다소 부족하다. 모처럼 선발출전에 2루수로 내보내 부담을 주기 보다는, 좌우 움직임이 적은 3루에서 부담 없이 뛰도록 한 것이다. 타순 역시 포수 양의지를 6번으로 올리고, 허경민을 8번에 배치해 편안하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두산의 '화수분 야구'는 그저 튀어나오는 게 아니다. 철저한 준비 속에 좋은 선수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제 허경민까지 한국시리즈 경험을 갖춘 내야수로 성장하게 됐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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