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어색하다. 아무리 잘 꾸며보려 해도 결국 어딘가에서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나온다. 어쩌면 올해 계속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한화 이글스 송은범에게 선발 보직은 '맞지 않는 옷'이 아니었을까. 이런 궁금증은 송은범이 다른 보직에서 조금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 인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15 KBO리그 한화이글스와 두산베어스의 경기가 6일 대전 한화이글스파크에서 열렸다. 한화 투수 송은범이 팀의 5대4 승리를 지켜낸후 포수 조인성과 하이파이브 하고있다. 대전=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5.09.06/
마치 2010년 SK 와이번스에서 시즌 중반이후 뒷문을 맡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을 때의 모습이 연상된다. 결국 송은범의 최적 활용법은 '선발' 보다는 '불펜' 특히 '마무리'에서 찾아야 할 듯 하다. 시즌 막판 한화와 송은범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 바로 'back to 2010', 2010년의 송은범처럼 쓰는 것이다.
송은범은 6일 대전 두산전에서 새로운 대안이 실용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날 송은범은 팀이 5-4로 쫓기던 8회초 무사 1, 2루 상황에서 등판했다. 안타 하나면 동점, 장타면 역전 허용까지도 가능한 대위기. 그러나 허경민-장민석-민병헌을 연달아 잡아냈다. 허경민은 페이크 번트 슬래시를 시도했으나 유격수 땅볼에 그쳤고, 장민석이 친 공도 내야 위에 떴다. 민병헌은 유격수 땅볼. 타구는 모두 송은범의 힘에 눌려 외야로 뻗지 못했다.
9회초 두산은 김현수-오재원-양의지의 중심 타선이 나왔다. 그러나 역시 패턴은 8회와 비슷했다. 타구가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최고 151㎞의 직구, 그리고 140㎞초반의 빠른 슬라이더. 선발로서는 '단조롭다'는 비판을 받았던 송은범의 투피치는 오히려 짧은 위기 상황에서는 효과적으로 타자를 윽박지를 수 있는 두 개의 칼날로 변했다.
이런 모습은 2010년 SK 시절 때를 연상케 한다. 당시 송은범은 총 44경기에 나와 평균자책점 2.30에 8승5패 8세이브를 기록하며 팀 승리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특히 시즌 초반 선발로 나왔다가 중반 이후 불펜으로 보직을 전환해서 더욱 위력적인 팀 기여도를 보여줬다. 선발로는 18경기에 나와 89⅓이닝을 던져 평균자책점 3.22를 기록했지만, 불펜으로서는 26경기에서 35⅔이닝을 소화하며 단 1점도 내주지 않는 '언터처블'의 위용을 뽐냈다. 당시 송은범을 가르치고 불펜 전환의 묘수를 낸 장본인이 바로 현재 한화에서 재회한 김성근 감독이다.
때문에 이번에도 송은범의 '불펜 전환'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더구나 현재 한화의 상황으로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시즌 내내 혹독하게 던진 윤규진과 권 혁의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 윤규진은 어깨 충돌증후군으로 아직 1군 엔트리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권 혁은 연이어 무너지고 있다. 이로 인해 불펜의 대수술이 불가피한 상황. 송은범은 분명 이런 한화의 위기 상황에 훌륭한 대안이자 치료제가 될 수 있다. 단, 2010년의 모습 그리고 6일 경기에서 나왔던 압도적인 구위와 마운드에서의 자신감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송은범이 이런 모습을 이어갈 수 있다면 한화의 가을잔치는 현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