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의미에서 '프로야구 신인왕'은 입단 첫 시즌에 좋은 활약을 기록한 선수 중 가장 뛰어난 선수를 뜻한다. 그러나 한국프로야구에서 이런 의미의 신인왕은 사라진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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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1년이 지난 현재, 고교선수들의 나무배트 사용은 오히려 개인 기량을 퇴보하고, 프로 적응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런 문제가 타자 뿐만 아니라 투수쪽에서도 발생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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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KBS N 스포츠 안치용 해설위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 고교야구를 보면 1번타자부터 9번타자까지 천편일률적이다. 어린 선수들이 나무 배트를 힘으로 콘트롤하지 못하니 거의 대부분이 임팩트 있는 스윙 대신 맞히고 뛰는 식의 타격을 한다. '우투좌타'형 선수들이 급격히 늘어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반발계수가 알루미늄 배트의 거의 절반 수준인 나무 배트로 장타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하체와 허리, 손목의 힘을 키워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공을 배트의 스위트 스팟(최소한의 힘으로 타구를 가장 멀리 보내는 최적 지점)에 정확히 맞히는 기술도 필요하다.
그러나 입시를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는 국내 고교야구 환경에서는 타자들에 대해 이런 체계적 웨이트 트레이닝과 기술 훈련을 시킬 여유가 없다. 대회에 나가면 무조건 성적을 내야 하기 때문에 일선 지도자들은 '이기는 야구'에만 몰입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고교 야구에서는 '스몰볼'이 대세가 됐고, 힘있는 거포들이 사라진 것이다. 결국 나무배트 환경을 힘으로 극복하기 보다는 꼼수로 실리만 추구하다보니 생긴 현상이다.
안 위원은 "최근 수 년간 고졸 선수가 제대로 프로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도 결국 이렇게 얕은 수로만 야구를 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결국 타자는 자기 특성을 잘 살려야 성공할 수 있다. 알루미늄 배트 환경에서라면 어린 고교생의 체격과 힘에 맞게 자기 특성을 살리는 스윙을 할 수 있다. 그렇게 성장하면서 개인의 필요성에 따라 자발적으로 나무 배트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는 훈련을 하는 편이 개인 기량과 프로 적응력을 동시에 키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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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무배트가 투수의 기량에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일까. 이는 타자와 투수를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공존하는 '천적 관계'로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타자와 투수는 필연적으로 서로를 쓰러트려야 살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만약 한쪽의 경쟁력이 약화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일시적으로는 다른 쪽의 기세가 높아지는 듯 하다가 결국 마찬가지로 낮아진 상대편의 수준에 맞춰지는 '하향 평준화' 현상이 생긴다.
이에 관해 안치용 위원은 "과거 알루미늄 배트 시절에는 한 경기에 홈런이 여러개 나오고 10여점 넘게 나는 경기가 수두룩했다. 이런 상황에서 투수들은 뼈아픈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아무리 에이스라도 잘못 걸리면 장타를 얻어맞기 때문에 더 좋은 공을 던지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없다. 선배들 세대와 우리 세대에는 그랬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지금 고교야구 에이스들은 너무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몇 년간 고교 에이스들의 평균자책점은 대부분 1점대나 2점대 초반이다. 그러나 이런 투수들이 곧바로 프로 1군 마운드에 설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프로와의 기량 차이가 월등하다. 별로 빠르지 않은 직구와 슬라이더만으로도 또래 타자들을 이겨내다보니 더 이상의 연구와 노력을 하지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천편일률적으로 '맞히고 뛰는' 타자들이 득세하는 고교야구의 트렌드 속에서 투수들도 완벽하게 힘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무기를 갖추지 않더라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보니 자기 발전을 게을리 한다는 지적이다.
상대적으로 여전히 고교생들도 알루미늄 배트를 쓰는 일본에서 지속적으로 150㎞ 이상을 던지는 오타니 쇼헤이같은 괴물투수가 등장하는 데 반해 한국 야구에서는 점점 강속구 투수가 사라지고 있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듯 하다. 결국 고교 야구에서 알루미늄 배트 재사용의 필요성에 관해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할 시점이 됐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