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의 좌절, 마이너거부권 써도 실력증명 숙제남아

기사입력 2016-03-31 00:30


김현수의 꿈이 올봄엔 좌절되는 분위기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시범경기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 뒤 볼티모어의 주전으로 도약하는 것이었다. 2년간 총액 700만달러 계약을 했을 당시만해도 장밋빛이었다. 잇단 시범경기 부진은 김현수를 사지로 몰고 있다.

볼티모어는 김현수에게 마이너리그행을 종용하고 있다. 댓 듀켓 볼티모어 단장은 직접 현지 방송에 김현수의 25인 로스터 제외, 마이너리그행을 언급했다. 룰파이브 드래프트로 영입한 조이 리카르드가 주전 좌익수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김현수는 시범경기에서 부진했다. 0.182(44타수 8안타)에 2타점 3득점. 반면 리카르드는 타율 0.390(59타수 23안타)에 1홈런 7타점 5도루다. OPS는 무려 1.039.

코칭스태프도 김현수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벅 쇼월터 감독은 "김현수의 마이너행을 내가 얘기했다"고 했다. 개막은 가까워지지만 계속해서 경기에 빠지고 있는 김현수다. 사실상 전력외라는 판단을 이미 내린 듯 하다.


◇볼티모어 김현수. 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6.03.06/
김현수는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 본인이 원치 않으면 마이너리그에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있어도 경기에 나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벤치만 데우는 것은 연봉을 떠나 현역선수가 감내하기 힘든 부분이다. 이를 무기로 구단은 김현수를 끊임없이 설득중이다. 마이너리그가 기회임을 강조하고, 적응기간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주지시킬 것이다. 마이너리그로 가면 아예 기회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회 재부여가 확정되는 것도 아니다. 성공사례도 있고, 실패사례도 있다.

박병호는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없다. 계약단계부터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했다. 마이너리그 거부권은 선수에게 훨씬 유리한 계약이고, 메이저리그에서 수년간 활약하지 않으면 적용되지 않는 계약임엔 분명하지만 만능은 아니다. 윤석민처럼 마이너리그 거부권 행사에 부담을 느낀 구단이 메이저리그 승격을 수차례 심사숙고하기도 했다. 윤석민은 이로 인해 오히려 충분한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일부에선 팀내 복잡한 경쟁상황을 감안, 김현수가 마이너리그보다는 메이저리그에 잔류하면서 기회를 노리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91년생인 리카르드 역시 시범경기는 잘 하지만 막상 페넌트레이스에서 실력을 입증할 지는 장담할 수 없다. 마이너리그보다는 메이저리그에 잔류했을 시에 기회를 부여받기가 쉽다. 하지만 규정을 능가하는 것은 선수의 실력과 가치 입증이다. 성숙한 프로리그일수록 더 그렇다.

박병호는 미국으로 떠나면서 "내가 직접 부딪히며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박병호는 시범경기에서 기대 이상의 실력을 보여줬다. 메이저리그 입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김현수는 적응을 놓고 혹독한 시간들을 보냈다.

더 많은 기회를 달라고 외치는 것은 경쟁에 임하는 선수들의 공통점이다. 코칭스태프는 반대로 주어진 기회, 때로는 부족한 기회 내에서 가치를 보여주는 선수만 쓴다. 늘 이 기회의 양과 질을 바라보는 시각 차에서 불만이 나오곤 한다. 성공한 선수, 스타선수들은 제한된 기회를 붙잡은 이들이다.

김현수가 메이저리그 잔류를 결정하든, 마이너리그행을 받아들이든 장단점은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 한국에서 연습생에서 시작해 최고선수로 발돋움한 김현수다. 미국에서도 그 길을 똑같이 걸어야 한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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