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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몸살, 점수 차, 일요일 등판. KBO리그 최초로 퍼펙트 투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더스틴 니퍼트(두산 베어스)가 직접 밝힌 이유다.
구단이 니퍼트의 감기 몸살을 인지하고 있던 건 20일(월요일)부터다. 목이 간질간질한 니퍼트는 집 근처 이비인후과를 찾았고 곧장 이 같은 내용을 보고했다. 그런데 다음날 증세가 심해졌다. 며칠간 휴식을 취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지만 갈 수록 힘이 빠졌다. 굵직한 목소리도 이미 쉰 터였다.
그래도 오후 3시30분께 잠실구장에 출근했다. 유니폼을 갖춰 입고 선발 등판을 준비했다. 불펜에서 공을 던지며 오후 6시30분을 기다렸다. 결과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퍼페트 피칭. 애초 빠른 승부를 펼친다고 마음 먹은 게 투구수 절약, 삼진으로 이어졌다. 77개의 공 중 직구만 54개 뿌렸고 변화구는 체인지업 9개, 슬라이더 9개, 커브 5개를 던졌다. 안타든 범타든 빨리 승부 보자는 의도가 다분한 볼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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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한용덕 코치는 토종, 외인 가리지 않고 1이닝이 끝난 뒤 무조건 선발의 몸 상태를 체크한다. '나이스 피칭'이라고 독려하기도, '볼배합을 바꾸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한데, 퍼펙트 피칭을 하고 있는 니퍼트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적잖이 당황한 한 코치가 "정말이냐. 지금 퍼펙트 피칭 중이다. 잘 생각해보라. 이런 기회는 또 오지 않는다"고 얘기할 정도다.
그 때 니퍼트가 전광판에 찍힌 점수를 가리켰다. "11-0으로 승부가 기울었으니, 내가 지금 내려가도 팀과 불펜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만약 그렇다면 말해달라. 더 던지겠다"고 덧붙였다. 한 코치는 서둘러 사령탑에게 다가갔다. 니퍼트의 의중,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결정을 기다렸다. 김태형 감독도 한 코치와 마찬가지로 "정말이냐"고 되물은 뒤 "그렇다면 바꾸라"고 지시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또 있다. 감기 몸살, 점수 차 외에도 니퍼트 입에서 나온 말이 바로 일요일 등판이다. 니퍼트는 한 코치에게 "만약 더 던질 경우 (다음 선발 일정인) 일요일 등판에 지장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앞서 못한 교통 사고, 담 증세로 두 차례 선발 등판을 소화하지 못했는데, 다시 한 번 로테이션을 거르며 팀에 피해를 줄까 걱정했다는 게 두산 관계자의 말이다.
그렇게 7회초 이현호가 마운드에 올랐다. 그렇게 퍼펙트 중인 투수가 대기록의 기회를 고사한 희대(?)의 사건이 발생했다. 통산 3000안타까지 단 1개를 남겨두고 마지막 타석에서 팀을 위해 희생 번트를 댔다는 영화 '미스터 3000'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 21일 경기가 끝나자마자 근처 병원을 찾은 니퍼트는 이런 얘기도 했다. "오늘 1-1 동점 상황이었다면 결코 마운드를 내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더 던졌을 것이다." 이것은 실화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