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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조작의 악령이 다시 한국 프로스포츠를 덥쳤다. 이번엔 국내 최고 인기스포츠라고 자부하는 KBO리그를 강타했다. 제9구단으로 빠르게 연착륙한 NC 다이노스의 선발 투수 이태양(23)이 승부조작 혐의로 창원지검의 수사를 받았다. 기소 예정이라는 얘기까지 나왔고, 실명이 거론되는 걸 감안할 때 검찰은 이태양의 혐의 사실 인정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검찰은 이태양이 브로커를 통해 특정 경기에서 고의로 볼넷을 내주는 식으로 승부조작에 가담했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이태양은 국민체육진흥법을 위반하게 된다.
불법 스포츠 도박 관련 전문가들은 "합법적인 스포츠토토 이외의 불법 인터넷 도박 시장의 규모는 단속에도 불구하고 급성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인위적인 조작을 통해 수익을 내기 위해 브로커가 동원되고 또 프로 스포츠 선수를 포섭해 승부조작을 시도하는 사례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의 규모는 전문가들의 추정으로는 합법적인 스포츠토토 시장(연간 3~4조원)의 최소 2배 이상이다. 그 정확한 규모를 판단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경찰사이버수사대가 단속을 강화하고 야구 축구 농구 배구의 프로스포츠단체가 매시즌을 앞두고 불법 행위 금지 교육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잊을만하면 승부조작과 불법 도박 사건에 연루된 프로 스포츠 선수와 지도자가 적발되고 있다. 2011년 K리그에 처음으로 초대형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남자농구 강동희 감독의 승부조작 사건, KBO리그 박현준 김성현 승부조작 사건 그리고 남자배구 승부조작 사건, KBL 선수들의 불법 스포츠 도박 사건 등이 줄줄이 터졌다. 국내 4대 인기 프로스포츠인 야구 축구 농구 배구가 이미 한 차례 이상씩 승부조작과 불법 스포츠 도박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다. KBO리그에서 4년 만에 사건이 다시 불거졌다.
2010년대 들어 연달아 터지고 있는 프로스포츠의 승부조작 사건은 마치 유행성 독감 처럼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프로스포츠가 365일 24시간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고 또 그걸 기반으로 스포츠토토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불법 스포츠 도박도 동시에 성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승부조작의 어두운 그림자가 선수들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과 경찰 사법당국이 눈에 불을 켜고 있어도 승부조작의 마수가 언제라도 선수 그리고 더 나아가 감독 심판들에게까지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승부조작 수사를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우리 스포츠 선수들은 학연과 지연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브로커들이 접근하기가 쉽다. 또 승부조작의 수위가 높지 않기 때문에 가담 당시에는 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또 적지 않은 돈을 주기 때문에 한번 가담할 경우 그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2년 박현준 김성현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승부조작의 정도는 고의 볼넷 등으로 간단했다. 그래서 '승부조작'이 아닌 '경기조작'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분명이 이런 행위도 깨끗한 승부를 펼쳐야 할 스포츠에선 범죄행위가 분명하다. 당시 김성현은 주변 동료들을 브로커에게 소개시켜주는 대가로 돈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승부조작 사건으로 징계를 받은 선수들의 다수가 자신들의 원래 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앞날이 구만리 같았던 박현준과 김성현은 지금까지 국내야구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프로축구의 최성국도 복귀를 타진해왔지만 여전히 심리적인 장벽이 높아보인다.
스포츠단체나 소속팀은 승부조작 사건 당사자를 용서하지 않았다. 중징계를 내려 악화된 여론을 진정시켰다. 단체 수장이나 구단 경영진은 사고 터질 때마다 "죄송하고 송구스럽다. 재발을 막기 위해 대책을 제대로 수립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태양의 소속팀 NC 대표이사와 단장도 똑같이 했다. 그러나 그동의 사례를 보면 내놓은 대책들은 실효성이 약하다. 불법 도박 업체들과 승부조작 브로커들은 그런 대책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물밑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자신들은 승부조작 사건과 무관하다고 안심하는 구단과 선수들은 언제 그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 그게 현재 프로 스포츠의 현실이다.
창원=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