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크' 염경엽, 사퇴 발표 직전 '고독의 10분'

기사입력 2016-10-17 22:40


17일 LG트윈스와 넥센 히어로즈가 서울 잠실구장에서 KBO 준플레이오프 4차전 경기를 펼친다. 경기 전 넥센 염경엽 감독이 덕아웃에서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잠실=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6.10.17

LG팬들의 환호성으로 뒤덮힌 잠실 구장. 패장 염경엽 감독은 터벅터벅 원정 감독실로 걸어왔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야구장에서 가장 고요하고 고독한 길. 그 길을 걸어온 염경엽 감독은 홀로 서있는 기자를 보고 손을 내밀었다. 몇 초의 악수. 꽉 쥔 염 감독의 손에 땀이 흥건했다. 표정은 쓸쓸했다. 지난 3년간 염 감독을 본 중 가장 많은 생각이 담긴 얼굴이었다.

선수들과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9회초 공격이 끝나고 패배가 확정된 후. 넥센 선수단은 허탈한 표정으로 짐을 챙겼다. 이제 시즌이 끝났기 때문이다. 늘 밝은 선수단 분위기가 축 처졌다. 서로 "수고했다"는 짧은 몇 마디만 나누고 짐 가방을 어깨에 둘러 멨다. 하나둘씩 선수들이 빠져 나갔다. 이강철 수석코치를 비롯해 넥센 코치들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미안하다"는 한 마디만 남았다.

염경엽 감독은 감독실에 들어가 잠시 목을 축였다. 5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넥센 홍보팀 직원이 감독을 데리러 왔다. 패장 인터뷰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실에 들어가 "모든 것이 감독 책임"이라고 운을 뗀 염경엽 감독은 "4년 동안 넥센 감독으로 행복했다.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싶다"고 말했다. 드문드문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감정이 북받치는듯 보였다.

이상한 기류는 경기 전부터였다. 염경엽 감독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혹시 무슨 결심이라도 한 것은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봤다. 그런데 염경엽 감독이 이 모든 예측을 뒤엎었다.

16일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허무하게 지면서 벼랑 끝에 몰린 상황. 시리즈 내내 넥센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최악의 전력으로 정규 시즌 3위라는 쾌거를 이뤘지만, 단기전은 또 달랐다.

염경엽 감독의 자진 사퇴는 구단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염 감독의 계약 기간은 내년까지다. 1년 더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심한듯 자신의 휴대폰에 써 온 사퇴의 변을 밝혔다.

염경엽 감독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지난 4년간 강박관념에 휩싸여 앞만 보고 달려왔다. 지금부터는 내 자신을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들을 준비하며 채우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넥센에서의 4년은 내 인생에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떠나고 싶다. 어떤 노이즈도 원치 않는다."


잠실=나유리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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