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다 히트]두 가지 악재 이겨낸 장원준, 엄지척

기사입력 2016-10-30 17:09


두산과 NC의 2016 KBO 리그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2차전이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다. 두산 선발투수 장원준이 1회초 수비를 마치고 덕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6.10.30/

1년 전 봄이었습니다. 두산 베어스 담당으로서 2차 캠프지인 일본 미야자키를 방문했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며 연습 게임이 취소된 날로 기억하는데요. 투수 한 명이 불펜 피칭을 하는데 코칭스태프는 물론 선수들까지 흘깃흘깃 쳐다보던 장면이 생생합니다. 취재진도 물론 공 한 개 한 개를 유심히 지켜봤었죠.

장원준(31)이었습니다. 84억원의 대형 FA 계약을 체결한 왼손 투수. 엄청난 몸값 때문인지 관심이 남달랐습니다. 고작 불펜 피칭뿐이었지만 모든 시선이 집중됐습니다. 저는 당시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가 취재진에게 해준 말도 잊혀지지 않는데요. "슬라이더만 놓고보면 왼손 투수 중 최고다. 직구와 완전 똑같이 온다. 올시즌 (장)원준이 형을 안 만나서 다행"이라고 씨익 웃더군요.

그리고 며칠이 흘렀을까요. 장원준이 실전 게임에 등판했습니다. 두산이 매해 참가하는 '규슌 미야자키 베이스볼 게임스'에서 입니다. 상대는 오릭스 버팔로스. 전 그날 리틀야구 보는 줄 알았습니다. "와우, 공 죽인다. 역시 다르다"고 말하던 좌익수 김현수나, "또 던져봐. 절대 못친다니깐"이라고 소리치던 2루수 오재원의 모습이 꽤나 천진난만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장원준은 아주 빨리 팀에 녹아들었습니다. 사람 좋은 유희관과 자주 식사했고, '안방마님' 양의지와도 대화를 자주 나눴습니다. 트레이드 마크인 무뚝뚝한 표정은 여전했지만요. 새 팀에 순탄하게 적응하면서 성적도 빼어났습니다. 지난해 30경기에서 12승12패, 4.08의 평균자책점, 올해는 27경기에서 15승6패 3.32의 평균자책점입니다. 두산 관계자는 "FA 투수 중 성공 사례가 별로 없어 걱정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우리는 10승만 해주면 대만족이라고 생각했다"며 "함께 생활해보니 성실하고 인성이 좋다. 특히 큰 경기에 강하다"며 흡족함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 앞서서는 걱정도 좀 됐습니다. 첫 번째, 정규시즌 이후 실전 등판이 한 차례도 없었고, 두 번째, 최근 자신이 브로커가 주장한 A씨의 수첩에 그의 이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전자부터 짚고 넘어가보겠습니다. 그는 팀이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짓자 9월26일 엔트리에서 빠졌습니다. 허리가 조금 불편했고, 그간 투구수가 많아 휴식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코칭스태프가 했습니다. 문제는 이후입니다. 한국시리즈 준비 기간 치른 청백전, 일본 미야자키 연습 경기에 모두 등판하지 못했습니다. 일정이 잡혔다 싶으면 거짓말처럼 비가 온 탓입니다. 그는 불펜 피칭 100개, 라이브 피칭 50개를 하며 KS를 준비했습니다. 김태형 감독도 "감이 떨어졌을 수 있다"고 우려한 이유입니다.

다음 후자입니다. 최근 PD수첩은 프로야구 승부조작과 관련된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자신이 브로커라고 주장하는 A씨와 인터뷰를 했고 그의 장부를 공개했습니다. 그러나 네티즌들이 모자이크 된 장부에 적히 한 선수의 이름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장원준입니다. 그러자 각종 게시판이 들끓었습니다. 마치 장원준이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처럼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빼느냐 마느냐, 여러 얘기가 나돌았습니다.

저는 그 때 '장원준이 그 브로커를 만나지도 않았다. 전혀 모른다'고 기사를 썼습니다. 공식적으로 선수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제가 가장 먼저 '장원준'이라고 거론했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저 역시 브로커를 만났고 장부를 직접 보았습니다. 그의 주장을 2시간 가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허점 투성이였습니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두산의 공식 입장을 확인한 뒤 바로 기사를 전송했습니다. 잘못된 정보로 선수가 다치면 안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기사로 인해 장원준 선수가 괜히 KS를 준비하는데 지장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면서요.

기우였습니다. 장원준 선수 씩씩했습니다. 왼손 타자에게 슬라이더가 아닌 체인지업을 과감히 뿌리면서 9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 막았습니다. 생애 첫 한국시리즈 완투승. 1-1이던 8회말 야수들이 4점을 냈습니다. 이때까지 투구수가 104개밖에 되지 않아 9회에도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엄지 척' 할 수밖에 없는 피칭. 왜 두산이 지갑을 열어 그를 잡았는지. 이제는 정말 확실히 알겠습니다.


그리고 두산은 장원준의 호투로 21년 만의 통합 우승에 성큼 다가갔습니다. 이러다가 4연승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 일방적인 시리즈로 전개되는 건 아닌지. 전문가들 얘기를 들어보니 실현 가능성이 꽤 된다고 하네요.

잠실=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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