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보'가 된 니퍼트 "나이 들어가는 내가 이런 팀에..."

기사입력 2016-11-14 16:29


2016 KBO 시상식이 14일 더케이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 평균자책점상 승리상 승률상을 수상한 두산 니퍼트가 소감을 전하고 있다.
시상식에서는 정규시즌 MVP와 신인상 및 개인 부문별 1위 선수에 대한 시상이 진행된다.
양재동=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6.11.14/

2016 KBO 시상식이 14일 더케이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 MVP를 수상한 두산 니퍼트가 삼성 최형우와 포옹을 나누고 있다.
양재동=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6.11.14/

알고보니 '울보'였다.

두산 베어스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는 강한 정신력으로 유명하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선수단에 쓴소리도 한다. 올 정규시즌 전반기를 1위로 마친 뒤였다. 선수단 회식 자리에서 "지금 웃지 말고 시즌 뒤 웃자고"고 했다. "술을 적당히 먹고 시즌 뒤 제대로 먹자"고 덧붙였다. 그의 멘탈을 말해주는 일화는 또 있다. 지난 5월 25일 잠실 kt 위즈전에서다. kt 선발 마리몬은 초반부터 제구에 어려움을 겪고 2이닝 10안타 10실점했다. 잠시 이성을 잃어 두산 타자에 위협구를 던지기도 했다. 그러자 니퍼트가 극도로 흥분했다. kt 벤치를 가리키며 "우리 선수들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소리 쳤다.

하지만 그런 그도 울보였다. 1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더케이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16 KBO리그 MVP· 신인왕 시상식. 투수 3관왕에 오른 그는 단장에 서자마자 눈물을 떨궜다. 삼성 라이온즈 최형우를 제치고 MVP까지 거머진 뒤에는 다시 한 번 눈시울을 붉혔다. 두산 관계자는 "마운드에서만, 그라운드에서만 강한 가보다. 이렇게 울 것이라고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그는 취재기자단 투표 결과 총 642점을 얻었다. 최형우(530점)를 112점 차로 제쳤다. MVP 선정 방식은 과거 다수결에서 올해부터 점수제로 바뀌었다. 1위부터 5위까지(1위 8점, 2위 4점, 3위 3점, 4위 2점, 5위 1점) 개인별로 획득한 점수를 합산, 최고 점수를 받은 선수가 수상자로 결정된다. 니퍼트는 1위 득표 102표 가운데 절반이 넘는 62표를 쓸어 담았다. 최형우는 35표였다. 취재진은 타격 3관왕 최형우보다 투수 3관왕에 오른 니퍼트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올 시즌 28경기(선발 27경기)에 등판해 22승3패, 2.95의 평균자책점으로 다승, 평균자책점, 승률(0.880) 1위를 차지했다. 또 한국시리즈에서도 1차전에 등판, 8이닝 무실점 역투로 팀 우승을 이끌었다. 외국인 선수가 정규시즌 MVP에 오른 건 1998년 타이론 우즈(OB 베어스), 2007년 다니엘 리오스(두산 베어스), 2015년 테임즈에 이어 2년 연속이자 역대 4번째. KBO리그 6년차가 된 니퍼트는 올 시즌 도중 교통사고를 당해 한차례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됐지만 20승 투수 반열에 올라섰다. 최소 경기, 최고령 20승이다. 특히 극심한 타고투저 흐름 속에 10개 구단 중 유일한 2점대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니퍼트는 수상 직후 눈물의 의미에 대해 "팀원들을 향한 눈물이다. 나이가 들고 있는 야구선수가 이렇게 훌륭하고 완벽한 팀에 속하는 게 흔치 않다. 흔치 않은 기회를 얻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난다"며 "모든 영광을 팀원들에게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좋아하는 야구를 생업으로 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하고 매 순간 고마울 뿐이다"며 "MVP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솔직히 후보들 보고 놀랐다. 쟁쟁한 선수들이다. 선발 투수가 MVP 경쟁에서 야수들을 제치고 받는 것은 쉽지 않다. 오늘 수상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팀원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공을 돌렸다.

그는 또 "KBO가 나의 커리어를 연장했다. 소중한 KBO다. 나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 힘든 시기가 많았다. 주변에는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꽤 됐다. 그러나 KBO가 도움을 줘 해낼 수 있었다. 분명한 건 두산이 아니고 다른 팀이었으면 이런 업적을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니퍼트는 그러면서 "올해 특별한 시즌이었던 만큼 악성 댓글이 많았다. 아내가 그런 것을 참고 날 내줘해 줘 고맙게 생각한다"며 "여보 사랑해"라고 한국말로 고마움을 전했다. 아울러 "올 시즌을 돌아보며 '난 잘했다'라고 말하면 뭔가 포기하는 것 같다. 내년 더 잘 하겠다"면서 "두산에 기여할 것들이 더 있다. 매일 거울 앞에서 '오늘 열심히 했다'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도록 내년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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