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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사이드암 투수 임기영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쿨한 선수라는 것이 느껴진다. 전날 좀 못던져도 아쉬워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피칭에 불만이 있더라도 다음 경기에 준비를 잘해서 잘던지면 된다는 식이다. 승패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하루가 지난 20일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의외의 것을 발견했다. 쿨한 그에게 의외로 징크스가 많다는 것이다. 평상시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던지는 그날만큼은 예민해진다.
유독 징크스가 많았던 김성근 전 한화 감독보다도 더 징크스가 많아 보였다. 잘됐을 때 했던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징크스가 되고 루틴으로 굳어진다고.
유니폼도 이겼을 때 입었던 것만 고집해서 입는다고. 구단에게서 받은 유니폼이 많지만 등판일에 입는 유니폼은 홈과 원정 딱 두벌밖에 없다. 임기영은 "잘 못던질 땐 버리기도 한다. 예전 NC전(4월 30일 6⅔이닝 8안타 4실점(3자책))에선 모자를 버렸다"면서 "이번엔 글러브를 바꿔볼까 생각중"이라고 했다.
등판일엔 밥을 국에 말아먹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밥을 국에 말아먹고 등판해 진짜 경기를 '말아먹은' 이후부터 생긴 징크스다. 임기영은 "고등학교 때 내생일이었는데 그날 비가 많이 와서 경기가 취소될 것 같았다. 국에 밥을 말아먹었는데 경기를 진행했다. 그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중간으로 나왔는데 완전히 '말아먹었'고 그 이후로는 등판하는 날엔 국에 말아먹지 않는다"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쭉 이어오고 있는 자신만의 루틴이다.
등판해서 덕아웃에서 루틴도 있다. 물을 한잔 마시고 립밤을 입술에 바른다고. 공을 던질 때 입술에 침을 발라 경기중엔 꼭 립밤을 바른다고. 그런데 19일 경기서 립밤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자신이 바르는 립밤을 가져오기 않은 것. 후배를 시켜 인근 편의점에서 사오게 했으나 그 립밤은 없었다고. 트레이너가 구해온 립밤은 그가 쓰던 것과는 달랐다. 임기영은 "립밤이 없으니까 경기전부터 초조했다. 트레이너님이 구해주시긴 했는데 내 것과 스타일이 달랐다"라고 했다.
임기영의 부모님에 대해서도 징크스가 있다. 부모님이 오면 꼭 못던진다는 것. 임기영은 "부모님이 말씀을 하지 않고 몰래 오셔도 그날은 잘 못던진다"면서 한국시리즈에 선발등판해도 못오시게 할거냐는 질문에 "TV로 보시게 할것"이라고 했다. 어머니까지 징크스 대열에 동참. 올해 자신의 첫 선발등판 때 어머니의 108배를 했는데 그때 잘던진 이후 어머니에게 108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임기영은 "첫 선발 등판 때 어머니께서 전날 108배를 하셨고, 경기 아침과 경기전에도 108배를 하셨다"면서 "그래서 내가 선발등판하는 날엔 꼭 108배를 해달라고 부탁드린다"라고 했다.
잘던지고 싶은 바람이 만들어낸 징크스들. 임기영은 "만들면 안되는데…"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만약 다음 등판 때 호투를 하게 된다면 앞으로 등판 다음날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자청할지도 모르겠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