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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내 실력인지 아직 믿을 수 없어요."
'20도루-20홈런'은 진정한 호타준족의 상징이다. 그것도 드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팀에서 낸 성적이다. 게다가 시즌 막판까지 치열하게 타격왕 경쟁까지 펼치다 겨우 타율 0.04 차이로 2위에 머물렀다. 이 정도면 리그 최정상급 타자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이 모두 두산 베어스 외야수 박건우(27)가 2017시즌에 남긴 성적이다. 그에 대한 외부 평가는 모두 'S급 타자'로 귀결된다.
박건우는 시즌 종료 후 가끔씩 외부 행사나 동료들의 결혼식장을 찾아와 축하를 전하는 것 외에는 개인 일정을 최소화 했다. 그리고는 일찌감치 내년 준비에 들어갔다. 서울 모처의 한 피트니스 클럽에서 절친한 선배인 김현수와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박건우가 이렇게 스스로를 다시 채찍질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올해보다 더 나은 내년'을 위해서다.
사실 박건우는 올해 자신의 성적에 자부심을 가질 만 하다. 그는 시즌 131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6푼6리(483타수 177안타)에 20홈런 20도루 78타점 91득점을 기록했다. 출루율 4할2푼4리에 장타율 5할8푼2리로 OPS가 1.006이나 됐다. 100경기-400타수 이상을 소화한 두산 타자 중에서 타율 1위에 장타율, 출루율 2위다. 리그 전체에서는 타율 2위, OPS 5위를 마크했다.
무엇보다 '20홈런-20도루'의 가치가 크다. 올해 KBO리그에서 '20-20클럽'에 가입한 선수는 단 세 명(KIA 버나디나, 롯데 손아섭, 두산 박건우) 뿐이었다. 특히 박건우는 두산의 팀 역사상 최초의 '20-20클럽' 가입자다. 말 그대로 생애 최고의 활약을 펼친 것이다. 이런 성적을 감안하면 생애 첫 골든글러브 수상도 노려볼 만 하다.
그러나 박건우는 이 같은 성적에 관해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아직까지도 올해 성적이 믿기지 않는다. 분명 뛰어난 성적이지만, 그게 정말 '내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나친 겸손 같지만, 이해가 되는 반응이기도 하다. 이제 겨우 두 번째 풀타임 시즌을 보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다수 코치들은 "진짜 좋은 타자는 한 두해 반짝 성적이 아니라 꾸준히 일정 수준의 기록을 내야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박건우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꾸준히 올해처럼 좋은 활약을 펼쳐야 진짜 '내 실력'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다시 훈련의 고삐를 죄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