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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같았던 박병호 홈런, 히어로즈는 지지 않았다

나유리 기자

기사입력 2018-11-03 08:54


2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KBO리그 플레이오프(PO) 5차전 SK 와이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가 열렸다. 넥센 박병호가 9회 동점 투런 홈런을 날렸다. 환호하고 있는 동료들. 인천=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8.11.02/

2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KBO리그 플레이오프(PO) 5차전 SK 와이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가 열렸다. 넥센 박병호가 9회 동점 투런 홈런을 날렸다. 환호하고 있는 박병호. 인천=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8.11.02/

후회 없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넥센 히어로즈의 2018년 가을이 한국시리즈 문턱에서 멈췄다. KIA 타이거즈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여정을 시작한 넥센은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를 3승1패로 꺾었고, 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에게 2패 후 2연승이라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2일 열린 SK와의 5차전에서 연장 10회까지 가는 혈투를 펼친 끝에 10대11로 패했다. 단 1점 차이. 10회말에 얻어맞은 홈런 2방으로 허무하게 졌지만, 그래도 넥센은 빛났다.

넥센은 올해 포스트시즌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만큼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장정석 감독은 사령탑 부임 후 처음으로 치른 포스트시즌이었지만, 과감한 용병술과 선수단에게 힘을 불어넣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가을 초보'라는 우려가 무색할만큼 현재 넥센의 전투력을 최대치로 활용했다.

또 어린 선수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했다. 임병욱은 큰 경기에서 더욱 강한 강심장을 보이며 공수에서 내내 맹활약을 펼쳤고, 김혜성이나 송성문, 김재현, 주효상 그리고 부상으로 아쉽게 조기 마감한 이정후까지. 경기를 지켜보는 타 구단 관계자들도 "대체 저 선수들이 어디서 저렇게 튀어나온거냐"고 깜짝 놀랄만큼 종횡무진 활력을 불어넣었다. 선배들이 부진한 가운데에도 넥센이 플레이오프 끝장 승부까지 상대팀들을 끌고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제리 샌즈 역시 정규 시즌 막바지에 보여준 모습 이상으로 포스트시즌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걱정했던 불펜 이보근, 김상수 등은 1구, 1구 집중력 있는 승부를 펼치며 우려를 깨끗이 씻었다. 선발 투수로 가능성을 재확인한 이승호와 초대형 투수가 될 자질을 갖춘 안우진 등 투수 파트에서도 어린 선수들의 도약이 돋보였다.

무엇보다 넥센이 마지막에 후련하게 웃을 수 있는 진짜 이유는 가장 극적인 순간에 거짓말처럼 터진 4번타자 박병호의 홈런 한 방이었다. 박병호는 포스트시즌 내내 부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정석 감독은 단 한번도 박병호를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하거나, 다른 수를 쓰지 않았다. 지금 넥센에게 박병호는 자존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를 버티며 함께 성장해 온 역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박병호가 아닌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타격 타이밍이 어긋난 상황에서 유독 박병호에게 잔인하리만큼 많은 찬스가 왔다. 그동안 박병호는 한번도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고, 준플레이오프 4경기도 13타수 3안타(1홈런) 2타점에 그쳤다. 플레이오프 4차전까지의 성적도 14타수 1안타 무타점에 불과했다. 박병호를 향한 기대까지 꺾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5차전에 터진 박병호의 홈런은 그 모든 안타까움들을 날리는 통쾌한 한 방이었다. 박병호는 4-9로 지고있던 넥센이 5점을 뽑아 9-9를 만든 9회초에서 동점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9회초 2아웃에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바뀐 투수 신재웅을 상대해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큼지막한 홈런을 날렸다. SK는 1아웃만 더 잡으면 승리로 경기를 마칠 수 있던 와중에 피가 식는듯한 홈런을 얻어맞았고, 넥센 벤치는 환호했다. 장정석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과 선수들은 믿을 수 없다는듯 열광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박병호가 마지막에 홈런을 치지 못하고 그대로 경기가 끝나 포스트시즌을 마감했다면 넥센에게는 이번 플레이오프가 패배보다 더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9회 2사에 터진 그 홈런 한방으로 자존심을 회복했다.

비록 졌지만 정말 잘 싸웠다. 넥센은 그동안 차근차근 준비해온 넥센표 화수분을 이번 가을 무대에서 유감없이 보여줬고, 4번타자 박병호의 건재를 알렸다. 아직 야구는 끝나지 않았다. 내년의 히어로즈를 기대해도 좋은 이유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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