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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치가 너무 크면 그 무게에 눌려 꺾이곤 한다. 하지만 강백호(19,KT 위즈)는 달랐다.
모든 시상식의 신인상을 휩쓴 강백호를 12월의 눈 내리는 날 수원 구장 근처 한 중식당에서 만났다. 유니폼이 아닌 사복을 입었을 때는 앳된 얼굴 20살 청년 그 자체였다.
◇"신인상, 솔직히 정말 받고 싶었어요!"
▶재미있었다. 작년에도 아마추어상을 3개 정도 받았었는데, 작년과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KBO 신인상에 대한 기대치가 분명히 있었을텐데, 압도적인 차이로 받게 됐다. 어느정도 예상했나.
▶솔직히 예상했다(웃음). 욕심은 있었는데 상 이야기가 너무 이슈가 되니까 부담스러워서 조심한 면이 있다. 내심 제가 받길 바라고 있었다. 받고 싶었다. 말로는 다른 동기가 받을거라고 했지만 막상 받으니까 좋더라. 시즌 중반에는 스스로 성적이 부족한 것 같고, 만족도가 낮아서 상을 받기에는 부족하다 싶었는데 막판에 좋은 성적이 난 덕분에 결과가 좋았던 것 같다.
-30홈런에서 딱 하나 모자랐다. 아쉽지 않나.
▶아 박신지!(웃음) 마지막 경기가 10월 13일 두산전이었는데, 의식을 엄청 했다. 그런데 신지가 스트라이크를 전혀 안던지더라. 볼넷을 나가면서 기분이 안 좋았던 게 처음이다.(웃음) 시즌 마지막 경기니까 선배님들도 다 응원해주셨다. 막상 볼넷이 되니 저도 아쉬웠는데, 벤치에 있던 선배님들이 모두 탄식을 하셨다. 그래서 기분 좋았다. 그런 감정을 처음 느꼈다.
-올 시즌을 돌아봤을 때 가장 기분 좋았던 순간은 언제인가.
▶너무 많아서 꼽을 수가 없다. 첫 경기는 기억도 안난다. 긴장 안하는 것처럼 보여도 긴장 많이 하고, 소심한 편이다. 시즌 초반까지는 계속 떨었던 것 같다. 첫 홈런도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쳤는지 모르겠다.
-작년에는 친한 이정후가 신인상을 받았고, 올해는 강백호가 그 자리를 이었다.
▶우리 둘의 스타일이 너무 다르지만, 둘 다 각자 잘한 것 같다. 나이 차이가 얼마 안나는 형들이 잘하고, 동기들도 잘하니까 의지가 된다. 정후형과는 고민이 있을 때 전화도 많이 하는 편이다. 서로 환경이 어떤지 잘 알고 이해해주니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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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고?
▶다이어트는 아니고 식단 조절이다. 체지방 감량, 근육량 증가가 목표다. 닭가슴살 위주로 먹고 체지방 측정한다. 그런데 최근 2주동안 식단 조절을 하고 인바디를 쟀는데 근육량이 떨어지고 체지방이 올라갔다. 그래서 그 후 2주 동안은 시상식 다니면서 먹고싶은대로 먹었는데 체지방이 감소하고, 근육량이 많아졌다. 아! 몸이 느끼는대로 먹고 행복감을 느껴야 좋은거라며 나 혼자 해석하고 있다.(웃음)
-원래 타고난 근육형 체형 아닌가.
▶지금도 근육은 많은 편인데, 더 키워야 장타를 늘릴 수 있다. 또 외야수니까 몸이 가벼워야 잘 뛸 수 있으니 체지방을 줄이려고 한다.
-올해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체력이었나.
▶144경기를 처음 해보니까 정말 힘들었다. 한번 정도 고비가 왔던 것 같다.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기 때문에 내년을 대비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프로에서 한 시즌을 보내보니, 메이저리그에 도전하지 않은 게 아쉽지는 않나.
▶고등학교때 에이전시와 계약했고, 그때는 사실상 미국에 가는 거였다. 그런데 내 고집 때문에 안 갔다. 돌아보니 잘한 것 같다.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고. 한국에서 기초부터 잘 닦아 올라가고싶다.
-투수에 대한 미련도 남아있지 않나.
▶후회 안한다. 미련이 없다. 투수로는 실력이 부족하다. 가끔 이벤트성으로 던지는 건 재미로 하는 거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구속이 빠른 편이다 보니 어깨에 무리도 올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타자를 택한 게 좋다.
◇'야구천재'의 부모님 그리고 할머니
-팀에서 가장 친한 선배는 누구인가?
▶(황)재균이형, (이)해창이형 등 87년생 토끼띠 띠동갑 형들과 친하다. 또 8살 차이인 (고)영표형이랑 가장 친하다. 영표형이랑은 가족같은 사이다. 우리 부모님이 영표형과 형수님과 정말 친해지셨다. 서로 집도 편하게 왕래한다. 그냥 가족이다. 이번에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가는데, 거기에 영표형이 포함돼 있다. 형수님이 회사일로 함께 못가게 돼서 형만 우리와 함께 간다.
-부모님이 시상식에도 함께 참석하시고, 무척 화목해보인다.
▶나는 부모님과 나이 차이가 엄청 많이 나는 늦둥이 외동 아들이다. 아버지는 40살 차이로 올해 예순이시고, 어머니와는 세바퀴 차이나는 띠동갑이다. 그래서 이름을 강백호라고 강렬하게 지으신 것 같다.(웃음) 그만큼 저를 위해 평생 최선을 다하셨기 때문에 더욱 부모님께 잘하고 싶다. 사실 부모님이 시상식에 오시는 게 가끔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는데, 부모님의 기쁨이니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아버지, 어머니가 행복해하실 때가 좋다.
-언제, 어떻게 야구를 시작했나. 야구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을 것 같다.(아버지 강창열씨는 수준급 사회인 야구 선수로도 이름이 알려져있다)
▶아버지가 야구를 사랑하셔서 강제로 시키셨다. 대리만족 느낌으로.(웃음) 제대로 시작한 건 초등학교 2학년이고, 야구공을 잡은 건 5살때부터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아빠가 야구하는 날 매번 따라가면 가지고 놀 게 그것 뿐이었다. 야구 말고 다른 종목은 특별히 좋아하는 게 없는데, 그래도 구기종목은 다 잘하는 편이다. 탁구 축구 볼링 등. 수준급은 아니어도 보통 사람들보다는 빠르게 습득하는 편이다.
-아버지 야구 실력이 수준급이라고.
▶잘하신다. 초등학교, 중학교때는 아빠가 정말 멋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선수이다보니 그렇지는 않다.(웃음) 이제는 아빠가 저에게 배우신다. 욕심이 많은 분이라 야구에 대해 여러 가지 물어보시는데, 지금은 제게 배우는 것을 행복하고 즐거워 하신다.
-신인상을 받고 돌아가신 할머니를 언급하기도 했다.
▶올해초 스프링캠프 출국 당일에 돌아가셨는데, 부모님이 저에게 말을 하지 않으셨다. 출국 전에 상황이 심각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짐작은 했지만 첫 캠프를 앞둔 나를 배려하려고 이야기 하지 않으신 거다. 캠프를 다녀와서 할머니가 계신 납골당에 다녀왔고, 이번에도 상을 받고 할머니를 보러 갔었다. 할머니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엄마, 아빠가 두분 다 일을 하시니까 저를 많이 키워주셨다. 저만 바라보고, 저만 좋아하신 분이다.
-그래서 상을 받고 더욱 기뻤을 것 같다.
▶특히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신다. KBO 신인상을 받고 집에 와서 아버지가 정성스레 상을 닦으시더라. 안방에서 특별대우 받고 있는 상이다.
-부모님이 지극정성으로 산삼을 비롯해 어릴때부터 좋은 음식들을 많이 먹이셨다고 들었다. 효과가 있는 것 같나.
▶사실 저는 맨날 먹던 거고, 지금도 자주 먹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산삼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추위를 잘 안타기는 한다. 또 타고난 건강 체질이다. 얼마전에 시상식 때문에 바지를 맞추러 갔는데 허벅지 한쪽이 30인치라고 하더라.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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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어떤 야구 선수가 되라고 조언 하시나.
▶겸손할 줄 알고, 팬들에게도 잘하는 선수가 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사실 저도 안좋은 기억이 있다. 초등학생때 야구복을 입고 야구장에 갔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나오기를 30분 정도 기다렸다. "사인 해주세요"라고 당시 한 선수에게 요청했는데 못본 척 지나가더라. 어쩔 수 없이 다른 선수에게 해달라고 했는데 그 선수는 거기 있던 사람들을 다 해주고 갔다. 그때 감동했다. 그리고 그때 사인을 안해준 선수에게 지금도 섭섭하다 사실.(웃음)
-그래서인지 팬서비스를 잘하는 편으로 꼽힌다.
▶사인은 거의 다 해주는 편이다. 이벤트가 있는 날은 일부러 더 여유있게 나간다. 퇴근길에도 출구에 서있는 팬들에게 다 해준다. 저번에 모든 사람에게 다 해주니 한시간반 정도 걸리더라. 물론 사람이 너무 많을 때는 못해줄 때도 있다. 오히려 사복을 입고 있을 때는 팬들이 못알아본다. 얼마전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한 초등학생이랑 이야기를 하게 됐다. 야구를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KT를 좋아한다는 거다. KT에서 어떤 선수를 아냐고 물었더니, "별로 없는데 강백호는 알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형이 강백호인데?"라고 말했는데, 그 아이는 "뻥치지 말라"며 냉정하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억울해서 "진짜야. 궁금하면 이리 와봐"라고 말했건만 유괴범 보듯이 가더라.(웃음)
◇2년차 징크스는 없다
-내년은 어떻게 보내고 싶나.
▶목표는 딱히 없고, 올해보다는 조금 더 잘했으면 좋겠다. 타율도 부족했고, 여러가지 다 부족했다. 열심히 몸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계속 웨이트트레이닝만 할 예정이다. 웨이트를 하면 체력도 늘게 마련이다.
-다른 팀들의 포스트시즌 경기를 지켜봤나.
▶당연하다. 함께 야구하던 사람들을 티비로 큰 경기에서 다시 보니까 정말 멋있어보였다. 플레이오프를 보면서 혼자서 볼배합도 해보고 여러 상상을 하면서 소름돋기도 했고, 재미있게 봤다. 좋아보였다. 우리팀도 빨리 가을야구를 할 수 있게 되길 기다리고 있다.
-팬들에게 전하는 각오가 있다면.
▶내년에도 아프지 않고 열심히, 풀타임을 뛰고 싶다. 또 꾸준한 선수가 되겠다. 슬럼프가 없고, '반짝'이 아닌 꾸준히 잘하는 선수로 팬들에게 기억되고 싶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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