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시련의 롯데 투수들, 우리 모두 실패의 시시포스다

기사입력 2019-03-29 13:48


윤성빈. 사진제공=롯데자이언츠

8홈런 포함, 24안타 23득점.

2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대폭발한 삼성 타선이 남긴 포연의 흔적이다.

다음날인 28일 선발 등판을 앞둔 롯데 투수 윤성빈도 이 광경을 지켜봤다. 하루가 흘렀다. 덕아웃 보드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졌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one team'

비상에 필요한 것은 적당한 바람, 그리고 현재 뿐이다.

흘러간 시간에 발목이 잡혀 사는 사람들이 많다. 후회와 회한을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내딛지 못한다. 이는 다가올 시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후회로 점철된 과거와 두렵고 걱정스럽기만 한 미래, 이 모두 실체가 없다. 그저 가짜 시간일 뿐이다. 진짜 시간은 오로지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있는 현재 뿐이다.

류시화 시인의 책 제목을 보드에 적은 사람은 사령탑 양상문 감독. "지나간 과거는 잊고 오늘 현재에 집중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선발에 도전하는 3년 차 롯데의 미래가 이 뜻을 새기고 마운드에 오르기를 내심 바랐다. 어제의 무시무시했던 삼성 타선을 잊기 바랐다. 홈런이나 안타를 내주면 어쩌나 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운 상상을 잠시 접어두길 바랐다. 오직 마운드에 서있는 이 순간부터 달라질 나에게만 오롯이 집중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어제의 기억을, 잠시 뒤에 벌어질지 모를 두려움을 차마 떨치지 못했다. 몸이 경직되고, 어깨가 굳었다. 공이 마음먹은 대로 뿌려지지 못했다. 존을 크게 벗어났다. 21개의 공 중 스트라이크는 단 6개. 아웃카운트 1개를 잡는 동안 볼넷 3개에 폭투 1개만이 기록됐다.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랐다. 윤성빈은 고개를 떨군 채 마운드를 내려갔다. 덕아웃에서도 아쉬움과 자책의 시간이 이어졌다.

실패가 트라우마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실패는 그저 교훈이 돼야 한다. 실패는 숙명이다. 누구나 실패한다. 현재 정상에 우뚝 선 선수들도 예외 없이 실패의 밑거름 속에 성장했다.

실패는 피하려고 노력해야 할 대상일 뿐,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실패는 우리 인생의, 그리고 그 축소판인 스포츠의 필연적 동반자다.

그 누구든 처음부터 만화처럼 잘 할 수 없다. 실패의 소중한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조금씩 채워 단 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가면 된다. 부끄러워할 일은 실패가 아니라 정체일 뿐이다.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 모두는 실패에 관한 한 시시포스다. 절망스러울 만큼 다시 밀어 올리고 또 올려야 한다.

대가 없는 노력은 없다. 답답하리 만큼 지루한 노력의 끝자락에서 느닷없는 기적을 만난다. 어느 날 문득, 나도 모르는 사이 꿈꿔왔던 창공에서 유려하게 비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전날 3회 홈런 2방에 무너진 4선발 장시환도, 이미 뜨겁게 달아오른 삼성 타선을 상대로 대량실점을 한 불펜 이인복도 고개를 떨굴 필요는 없다.

정상을 향해 절벽을 오르는 자는 아래를 내려다 보지 않는다. 두려움이 생기면 더 이상 오를 수 없다. 날아가는 새는 돌아보지 않는다. 고개를 떨구지도 않는다.


부산=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장시환. 사진제공=롯데자이언츠

이인복 사진제공=롯데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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