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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째 노디시전, 아쉬움 대신 박수친 롯데 레일리 '에이스의 품격'

기사입력 2019-08-04 07:29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스포츠조선 박상경]3일 부산 사직구장.

롯데 자이언츠가 1-0으로 앞서던 8회초 1사 만루. 고효준이 뿌린 공을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가 걷어내 좌측 펜스 방향으로 보냈다. 뻗어나가지 못한 타구를 좌익수 전준우가 잡았지만, 그 사이 3루 주자 박건우가 태그업, 홈을 밟았다. 1-1 동점. 8회초 선두 타자 박건우에게 안타를 내주고 마운드를 내려갔던 롯데 선발 투수 브룩스 레일리의 '노디시전'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레일리의 얼굴엔 아쉬움의 일그러짐은 없었다. 오히려 아웃카운트를 추가한 고효준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사실 레일리 입장에선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던 날이다. 이날 기록은 7이닝 3안타 3볼넷 4탈삼진 1실점. 볼넷이 있었지만, 연속 안타는 없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빼어난 구위와 컨트롤로 상대 타선을 침묵시켰다. 최고의 투구였고, 당연히 승리가 따라왔어야 했을 경기였다. 지난 7월 12일 사직 두산전에서 7이닝 1실점에 그쳤음에도 승리를 챙기지 못했던 기억까지 떠올리면, 또 한 번의 '노디시전'은 속이 아플 수밖에 없다.

올 시즌 레일리의 노디시전은 3일까지 9경기째.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노디시전이 7회, 퀄리티스타트 플러스(선발 7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가 4회에 달한다. 6월 11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선 8⅓이닝 1실점을 하고도 승리를 챙기지 못한 바 있다. 승리 하나가 성과로 연결되는 투수, 특히 외국인 선수들 입장에선 이 정도 기록을 덤덤하게 참고 넘어가긴 어려울 수도 있다.

레일리는 초연한 모습이다. 7회초 유격수 문규현의 실책으로 이닝을 끝내지 못한 채 2사 만루 위기에 놓였던 상황에서도 좌익수 뜬공으로 아웃카운트를 채웠다. 더그아웃을 향해 포효한 레일리는 수비를 마친 뒤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더그아웃으로 향하던 문규현을 향해 씩 웃은 뒤 머리를 툭치는 제스쳐를 했다. 8회초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인 고효준에게도 격려를 보냈다. 팀 승리 뒤엔 날아간 승리에 아랑곳 않고 동료들을 축하하기 위해 더그아웃 앞으로 나와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지난 5년간 롯데 마운드를 지켜온 푸른 눈의 에이스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이 아닌 팀의 승리였다.

레일리는 올 시즌에도 높은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2할8푼1리·좌타자 2할2푼9리), 후반기가 되서야 구위가 오르는 '슬로스타터' 기질 등 과제를 풀지 못했다. 장수 외인 투수지만 그만큼 상대 타자들에게 구질, 특성이 노출된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면서 동료들에게 '나가 아닌 우리'를 외치는 그의 모습은 적지 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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