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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한국 선수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2000년 1월이다.
에이전트는 전성기가 지난, 소위 한물간 선수에 대해서는 소홀한 경향이 있다.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보라스도 예외가 아니다. 박찬호 추신수 김병현도 겪은 일이다.
하지만 막 꽃을 피우는 전성기에 접어든 선수나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선수에 대해서는 업무의 집중도를 높인다. 이런 능력에서 보라스와 비교될 에이전트는 없다. 전직 메이저리거, 스카우트, MIT 출신 경제학자와 NASA 출신 컴퓨터 엔지니어, 변호사 등 75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보라스 코포레이션은 선수에게 늘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준다.
보라스 덕분에 박찬호, 추신수, 류현진은 소위 돈방석에 앉았다. 2001년 12월 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의 5년 6500만달러 FA 계약, 2013년 12월 추신수-텍사스의 7년 1억3000만달러 FA 계약, 그리고 2012년 12월 류현진-LA 다저스의 6년 3600만달러 입단 계약 및 2019년 12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4년 8000만달러 FA 계약이 모두 보라스의 작품이다.
선수 자신들의 기량과 에이전트의 수완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들 3명이 보라스를 앞세워 선사받은 계약액만 총 3억5890만달러(약 4423억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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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보라스가 이제 또 다른 한국인 유망주들에 기대를 걸고 힘찬 행보에 들어갔다. 이정후(25·키움 히어로즈)와 심준석(19·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그들이다. 지난해 봄 덕수고 3학년이'던 심준석과 에이전트 계약을 한 보라스는 최근 이정후와도 대리인 계약을 맺었다. 둘 다 보라스측에서 몇 년에 걸쳐 공을 들였다고 한다.
보라스는 두 선수의 '무엇'을 본 것일까.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자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심준석은 빠른 공과 메이저리거들에 뒤지지 않는 하드웨어(키 1m94)가 강점이다. 지난해 전국대회에서 직구 최고 구속 157㎞를 찍었다.
디 애슬레틱은 '심준석의 에이전트는 스캇 보라스이며, 평균 95마일 안팎의 직구와 12-6시, 즉 수직으로 떨어지는 커브가 주무기로 슬라이더와 체인지업도 수준급으로 성장하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피츠버그 스카우트들의 평가를 그대로 전한 것인데, 보라스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어린 박찬호'를 연상시킨다.
이정후는 타격의 정확성과 외야 수비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드러운 스윙과 강한 어깨는 메이저리그 통계 전문 팬그래프스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정후는 이번에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한 일본인 외야수 요시다 마사타카와 곧잘 비교된다. 요시다는 2020~2021년 연속 퍼시픽리그 타격 1위를 차지했고, 20홈런 이상을 4시즌 기록했다. 통산 421개의 볼넷, 300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이정후의 통산 볼넷과 삼진은 각각 334개, 281개다. 요시다와 비슷하다. 요시다를 5년 9000만달러 선수로 만든 이가 바로 보라스이니, 이정후의 올해 말 계약 규모에도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보라스는 이정후의 경우 메이저리그 입단 계약을 넘어 향후 FA 자격을 얻는 시점까지 구상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류현진도 첫 계약을 6년으로 한 뒤 결국 FA 계약으로 8000만달러를 손에 넣었다.
심준석은 '박찬호의 길'을 가야 한다. 마이너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거로 올라서기 위해선 기약없는 인내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구속을 100마일까지 올려야 하고, 변화구는 더 다듬어야 한다. 피츠버그는 게릿 콜 이후 이렇다 할 에이스를 키우지 못했다. 심준석으로선 충분한 기회도 주어질 것이다.
보라스에게는 심준석과 이정후가 끝이 아닐 수 있다. 아마추어든, KBO리그든 향후 한국 시장을 향해 더욱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 것으로 보인다. 보라스도 한국 야구의 '톱 클래스'를 주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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