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게 능사가 아니다' 너무 선량한 캡틴, '가을야구 탈락' 롯데의 자화상…부산의 심장, 7살 어린 후배에게도 배워야한다 [SC시선]

최종수정 2025-09-30 11:11

'참는게 능사가 아니다' 너무 선량한 캡틴, '가을야구 탈락' 롯데의 자…
최원태와의 벤치클리어링 당시 전준우. 스포츠조선DB

'참는게 능사가 아니다' 너무 선량한 캡틴, '가을야구 탈락' 롯데의 자…
29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롯데와 SSG의 경기, 6회초 2사 1루 롯데 전준우가 SSG 앤더슨에게 삼진을 당한 후 흥분한 앤더슨의 반응에 의아해하고 있다. 인천=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5.09.29/

'참는게 능사가 아니다' 너무 선량한 캡틴, '가을야구 탈락' 롯데의 자…
29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롯데와 SSG의 경기, 6회초 2사 1루 SSG 앤더슨이 롯데 전준우를 삼진 처리한 후 화를 내고 있다. 인천=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5.09.29/

[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야구하는 것보다 주장이 더 힘들다. 원래 내가 나서는 성격이 아닌데, 야구장에선 연기가 반이다. 그래도 주장이 해야할 일이 있더라. 벤치클리어링 때도 전보다 적극성이 늘었다."

지난해 삼성 라이온즈 구자욱(32)의 토로다. '캡틴'의 무게감이 담겼다. 나이와 경력, 실력 모든 면에서 팀의 중심에 있는 선수다운 고민이다.

구자욱은 주장을 맡은 뒤로 그라운드 안팎에서의 표현이 늘었다. 더그아웃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것 이상으로 으쌰으쌰를 하거나,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서고, 상대 선수들과도 친밀함을 유지하되 예민한 감정을 주고받을 때는 절대 피하지 않는다.

야구장은 전쟁터고, 상대가 후배라도 배울 점이 있다. 롯데 자이언츠 전준우(39)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리더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분위기를 주도하고 이끄는 사람도 있고, 시어머니마냥 한명한명 잔소리하고 챙기는 스타일도 있다. 그런가 하면 묵묵히 솔선수범하며 후배가 절로 따르게 되는 사람도 있다.

전준우는 모두의 모범이 되어 이끄는 3번째 유형에 가깝다. 후배들을 붙잡고 싫은 소리를 하거나, 더그아웃에서 먼저 나서 흐름을 만드는 건 그의 방식이 아니다. 사람좋은 웃음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구자욱 역시 전준우와 비슷한 스타일로 분류된다.

하지만 유형과 별개로 리더에겐 본질과 다르게 행동해야할 때도 있다. 전준우에게 아쉬운 것이 바로 그 대목이다. 29일 인천 SSG 랜더스전이 그랬다. 너무 선량한 캡틴이야말로 가을야구에서 탈락한 롯데의 자화상이다.


'참는게 능사가 아니다' 너무 선량한 캡틴, '가을야구 탈락' 롯데의 자…
과거 롯데와의 벤치클리어링 당시 격분하는 구자욱. 스포츠조선DB
1-4로 뒤지던 6회초 2사 1루, SSG 앤더슨의 마지막 이닝이었다. 앤더슨은 1사 후 고승민에게 볼넷을 허용했지만, 레이예스와 전준우를 잇따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이때 앤더슨이 타석을 향해 불필요한 도발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정확히 들리진 않았지만, 전준우는 황당한 표정으로 앤더슨을 바라봤다. 더그아웃의 김태형 롯데 감독도 어이없어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내 이숭용 SSG 감독이 더그아웃 밖까지 나와 대신 사과를 전했다.

아쉬운 부분은 전준우의 대응이다. 이미 팀은 가을야구가 좌절됐고, 전체적으로 축 처진 분위기에서 남은 경기를 치르고 있다. 가을야구를 앞둔 SSG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

분위기를 띄운답시고 무리한 도발이나 트래시토크가 옹호받는 시대는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상대의 불필요한 행동에는 표정 외에 분명한 액션이 필요할 때도 있다. 선은 앤더슨이 먼저 넘었다. 벤치클리어링을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참는게 능사가 아니다' 너무 선량한 캡틴, '가을야구 탈락' 롯데의 자…
29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롯데와 SSG의 경기, 6회초 2사 1루 김태형 감독이 전준우를 삼진처리하고 감정을 표출한 앤더슨의 모습에 놀란 듯 상대 더그아웃에 제스쳐를 보내고 있다. 인천=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5.09.29/
'굳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생각 자체가 '가을야구도 떨어졌는데'라는 속내를 깔고 있다. 도발, 혹은 무시를 당한 전준우 자신이 팀의 핵심이자 최고참이라는 점을 되새겨야한다. 포스트시즌이 좌절된 지금 경기를 지켜보는 이들이야말로 '찐팬'이다. 그들이 애써 꾹 참는 전준우의 모습에 박수를 보낼까, 아니면 가슴아프고 답답해할까.

돌아보면 시즌 중에도 이런 장면이 적지 않았다. 물론 삼성 라이온즈 최원태와의 벤치클리어링 때처럼 전준우가 적극적으로 나선 사례도 있다. 그 모습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전준우가 맞대응에 나선 흔치 않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원태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순간에도 최원태의 노기서린 표정과 달리 허탈한 웃음을 머금은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11살 차이가 난다.


'참는게 능사가 아니다' 너무 선량한 캡틴, '가을야구 탈락' 롯데의 자…
최원태와의 벤치클리어링에 나선 전준우를 구자욱이 말리고 있다. 스포츠조선DB

'참는게 능사가 아니다' 너무 선량한 캡틴, '가을야구 탈락' 롯데의 자…
스포츠조선DB
2008년 롯데에 입단한 전준우는 올해로 18년차 원클럽맨이다.

선수 생활 내내 압도적인 보컬 리더와 함께 해왔다. 그런데 강민호와 손아섭, 이대호가 차례로 팀을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팀의 중심에 섰다. 불혹을 앞둔 나이까지 팀 타선의 중심으로 우뚝 서 있다. 어느덧 2000안타도 넘겼고, 일각에서 영구결번 이야기가 나올 정도의 선수가 됐다.

주장은 정말 어려운 자리다. 팀내 존재감과 실력을 겸비해야한다. 뛰어난 배짱과 리더십이 있어도 1,2군을 오가는 입지라면 주장의 목소리가 힘을 받지 못한다. 투수보다는 매일 경기에 나서는 야수가 적합하고, 스스로의 기량을 갈고 닦으면서도 다른 선수들을 신경써야한다. 맡는 사람도, 맡기는 사람도 선뜻 결정하기 힘든 이유다. 전준우 역시 부상이 미처 회복되기도 전에 1군에 동행하며 팀 분위기를 다잡고자 했다.


'참는게 능사가 아니다' 너무 선량한 캡틴, '가을야구 탈락' 롯데의 자…
2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KIA와 롯데의 경기. 8회말 2사 2, 3루 전준우가 2타점 2루타를 친 후 환호하고 있다. 부산=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5.7.27/
타 팀의 경우 30대 초중반, 1차 FA 안팎의 베테랑이 맡는 자리다. 전준우는 팀내 사정이 여의치 않아 최근 5년 중 4시즌 동안 캡틴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간판타자로서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존경을 받을만하다.

나설 때는 나서줘야한다. 할 때는 확실히 해야한다. 경기에 임하는 모범적인 태도만으론 부족한 순간이 있다. 승부처에서의 기싸움은 선수 자신이 아닌 팀을 위한 것이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