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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야구하는 것보다 주장이 더 힘들다. 원래 내가 나서는 성격이 아닌데, 야구장에선 연기가 반이다. 그래도 주장이 해야할 일이 있더라. 벤치클리어링 때도 전보다 적극성이 늘었다."
야구장은 전쟁터고, 상대가 후배라도 배울 점이 있다. 롯데 자이언츠 전준우(39)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리더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분위기를 주도하고 이끄는 사람도 있고, 시어머니마냥 한명한명 잔소리하고 챙기는 스타일도 있다. 그런가 하면 묵묵히 솔선수범하며 후배가 절로 따르게 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유형과 별개로 리더에겐 본질과 다르게 행동해야할 때도 있다. 전준우에게 아쉬운 것이 바로 그 대목이다. 29일 인천 SSG 랜더스전이 그랬다. 너무 선량한 캡틴이야말로 가을야구에서 탈락한 롯데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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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앤더슨이 타석을 향해 불필요한 도발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정확히 들리진 않았지만, 전준우는 황당한 표정으로 앤더슨을 바라봤다. 더그아웃의 김태형 롯데 감독도 어이없어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내 이숭용 SSG 감독이 더그아웃 밖까지 나와 대신 사과를 전했다.
아쉬운 부분은 전준우의 대응이다. 이미 팀은 가을야구가 좌절됐고, 전체적으로 축 처진 분위기에서 남은 경기를 치르고 있다. 가을야구를 앞둔 SSG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
분위기를 띄운답시고 무리한 도발이나 트래시토크가 옹호받는 시대는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상대의 불필요한 행동에는 표정 외에 분명한 액션이 필요할 때도 있다. 선은 앤더슨이 먼저 넘었다. 벤치클리어링을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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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시즌 중에도 이런 장면이 적지 않았다. 물론 삼성 라이온즈 최원태와의 벤치클리어링 때처럼 전준우가 적극적으로 나선 사례도 있다. 그 모습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전준우가 맞대응에 나선 흔치 않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원태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순간에도 최원태의 노기서린 표정과 달리 허탈한 웃음을 머금은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11살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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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생활 내내 압도적인 보컬 리더와 함께 해왔다. 그런데 강민호와 손아섭, 이대호가 차례로 팀을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팀의 중심에 섰다. 불혹을 앞둔 나이까지 팀 타선의 중심으로 우뚝 서 있다. 어느덧 2000안타도 넘겼고, 일각에서 영구결번 이야기가 나올 정도의 선수가 됐다.
주장은 정말 어려운 자리다. 팀내 존재감과 실력을 겸비해야한다. 뛰어난 배짱과 리더십이 있어도 1,2군을 오가는 입지라면 주장의 목소리가 힘을 받지 못한다. 투수보다는 매일 경기에 나서는 야수가 적합하고, 스스로의 기량을 갈고 닦으면서도 다른 선수들을 신경써야한다. 맡는 사람도, 맡기는 사람도 선뜻 결정하기 힘든 이유다. 전준우 역시 부상이 미처 회복되기도 전에 1군에 동행하며 팀 분위기를 다잡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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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설 때는 나서줘야한다. 할 때는 확실히 해야한다. 경기에 임하는 모범적인 태도만으론 부족한 순간이 있다. 승부처에서의 기싸움은 선수 자신이 아닌 팀을 위한 것이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