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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무려 2만1000여명의 관중이 랜더스필드를 가득 채웠다. 선수들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팬 이벤트가, '초대박'을 쳤다.
시작은 작년이었다. 작년 시즌 종료 직후, 선수들끼리 야구장에 모여 포지션을 맞바꿔 미니 게임을 치렀었고 이 경기가 구단 채널을 통해 공개됐다. 당시 몇몇 팬들이 "우리도 직접 보고싶다"는 이야기를 낸 것이 아이디어가 되어, 올해는 공식적으로 티켓 예매까지 오픈했다.
주장 김광현이 "올해도 작년 '민지전'을 다시 해보자"고 제안했고, 선수단은 물론이고 구단까지 흔쾌히 동참했다. 구단은 정규 시즌에 못지 않은 인력을 운영했고, 처음에는 일부 좌석을 대상으로 티켓을 예매했다가 순식간에 매진이 되는 예상치 못한 인기에 풀지 않았던 4층 좌석들까지 오픈했다. 이날 야구장에는 2만1000여명의 팬들이 모였다. 물론 구장 크기의 차이 때문이지만, 같은날 대전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플레이오프 5차전(1만6750석)보다 관중이 더 많았다. 또 선수단 가족들까지 초청해 모두가 함께 하는 축제의 장이 됐다. 이날 수익금은 선수단 이름으로 기부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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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부담 아닌 부담도 있었다. 이벤트성 경기라, 실력을 장담할 수 없는데 2만명이 넘는 관중에 취재진까지 모이다보니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이냐", "대체 왜 이렇게 일이 커진거냐", "판 키운 사람을 색출해야 한다"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모든 선수들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섬팀' 감독을 맡은 한유섬은 "판이 너무 커졌는데, 팬분들이 올해 야구장 많이 찾아와주시고 응원을 해주셨다. 오늘도 같이 즐겁게 즐겼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이날 경기전 유니폼을 상하의 완전히 차려입고, 선수들의 훈련을 진지하게 지켜본 한유섬은 '진짜 감독님 같다'는 평을 여러 차례 들었다. "그 얘기만 20번 넘게 들었다"는 그는 "앞으로 제가 어떻게 모르겠지만, 먼 훗날 될 수도 있는 감독 리허설 무대라고 생각하겠다"고 호기롭게 이야기했으나, 경기가 끝난 후 "너무 힘들다. 아까 그 발언은 취소하겠다"고 손사레를 쳐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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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팀' 감독을 맡은 오태곤은 "일이 커져서 감당이 안된다"면서도 "저는 분위기를 중시하는 감독이다. 경기는 선수가 하는 거고, 분위기를 좋게 하는 게 감독, 코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즐거운 분위기 속에 단기 레이스를 해나가겠다. 못쳐도 웃자고 강조했다. 과연 웃음이 나올지는 모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양팀 감독 뿐만 아니라 선수단 전체는 이날 경기전 미팅을 갖고 "무조건 부상 방지"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물론 팬들을 위해 재미있는 경기를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상을 당하면 서로 민망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즌 종료 직후라고는 해도, 대표팀에 가야할 선수들도 있고 당장 다음날 마무리캠프 출국이라 부상 금지가 첫번째였다.
경기는 7이닝 동안 2-2 동점 접전을 펼치다가, 연장 8회 무사 만루 승부치기에서 8회말 문승원의 끝내기 싹쓸이타를 앞세워 '섬팀'이 5대4로 승리했다. 투수 최정과 타자 김광현의 승부, 좌완 투수 한두솔의 우월 선제 투런 홈런, 포수 조형우의 149km 강속구, 문승원의 클러치 본능까지. 선수들은 틈틈이 분장과 짧은 안무로 팬들을 웃기는 광대가 되기를 자처했다.
주장 김광현은 "이렇게 많이들 오실 줄은 몰랐다. 선수단이랑 팬분들의 이름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돼서 뜻깊다"면서 "우리팀 팬분들로만 야구장이 이렇게 가득 찼다는 게 정말 의미가 큰 것 같고 뿌듯하다"고 웃으며 관중석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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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은 "내년에는 지금보다 좀 더 추울 때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장 첫번째는 우리가 좀 더 가을에 오래 야구를 하는 것이다. 올해의 아쉬움을 발판 삼아서, 내년에는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며 벌써부터 다음 시즌을 향한 의지를 다졌다.
인천=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