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진정한 프로' 이승엽을 만든 아버지. 그 소중한 분과 작별을 했다.
이승엽 전 두산 베어스 감독은 한국 야구가 낳은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2003년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인 56홈런을 기록했다. 홈런왕과 MVP 타이틀을 각각 다섯 번씩이나 차지했다. 골든글러브는 무려 10차례 수상했다.
KBO리그 뿐 아니라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최고 인기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타자였다. 국가대표팀에서의 존재감도 절대적이었다.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일본과의 조별 예선 홈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일본전에서의 8회 극적인 역전 결승홈런은 아직도 팬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국민 타자'라는 닉네임은 아무나 얻을 수 없는 영광이었다. 그만큼 한국 야구를 상징하는 '홈런 타자' 이승엽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야구는 몰라도 이승엽은 알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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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스타 이승엽이 늘 지켜온 태도는 '겸손'이었다. 일거수일투족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건 선수 이전 인간으로 매우 힘든 일. 인터뷰를 하고, 팬들과의 만남 등이 늘 유쾌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승엽은 늘 웃음을 잃지 않았고, 누구를 만나더라도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진짜 프로'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선수였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수록, 더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부친 이춘광씨의 한결같은 가르침이 체화돼 있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부터 이승엽이 엄청난 활약을 할 때마다 부친 이씨도 함께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 현장도, 이승엽이 56호 홈런, 400홈런을 친 날도 야구장에서 아들과 함께 호흡했다. 대구시민구장에서 시구도 했다. 이승엽이 지바롯데 시절도 현장에 있었다. 바비 발렌테인 감독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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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고,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가 됐다고 해도 아버지 눈에는 그저 막내 아들일 뿐. 일본에 처음 넘어가 고생할 때는 매일이 걱정이었다. 손가락이 너무 아파 배트를 쥐기도 힘든 상황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자신이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며 참고 뛰는 아들을 보면서 눈물도 흘렸다.
천하를 호령하던 대스타 이승엽도 눈물의 은퇴를 했고, 프로야구 두산의 감독까지 했다. 세월이 흘렀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아버지와의 영원한 이별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씨는 2일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지병이 있었고, 올해 들어 병세가 악화됐다.
최고의 선수를 길러낸, 최고의 아버지로 길이 남을 이씨의 빈소는 대구시민전문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4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