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고재완 기자] 질 것 같은 경기에서도 필승조를 투입하는 뚝심,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물밑에서 진행되는 치밀한 세대교체. LG 트윈스 염경엽 감독의 머릿속에는 다 계획이 있었다.
개막 3연패의 불안한 출발은 온데간데없다. 파죽의 6연승을 내달린 LG가 8승 4패를 마크하며 KT 위즈와 함께 리그 공동 선두로 뛰어올랐다. "우리 팀은 아직 정상 궤도가 아닙니다. 승운이 잘 따르고 있을 뿐이죠."
연승 질주 속에서도 염 감독은 한껏 몸을 낮췄다.
하지만 야구계 안팎에서는 현재 LG의 굳건한 행보를 단순한 '운'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2023년 부임 후 최근 3년간 두 번의 통합우승을 이끈 명장, 그리고 1군 무대 뒤편에서 차근차근 진행 중인 '염경엽표 육성 시스템'이 마침내 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리빌딩'. 베테랑을 내치고 유망주로 엔트리를 채우는 극단적인 쇄신을 염 감독은 단호하게 부정한다.
"프로야구 44년을 봤지만, 리빌딩을 외친 팀 중 성공한 팀은 보지 못했습니다. 3년 동안 리빌딩해서 감독, 사장, 단장이 살아남은 팀이 한 팀도 없었죠."
그가 꼽은 유일한 예외는 2016년의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다. 강정호, 박병호, 손승락, 유한준, 앤디 밴 헤켄 등 투타 기둥이 한꺼번에 뽑혀 최하위 후보로 지목됐지만, 김하성, 이보근, 김상수 등이 튀어나오며 3위에 오르는 기적을 썼다. 염 감독은 "그때도 3년 전부터 주축 선수들이 빠질 것을 예측하고 준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준비 없는 리빌딩은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LG의 현재 모습이 바로 그 '철저한 준비'의 결과물이다. 육성선수 출신 신민재가 골든글러브 2루수로 성장했고, 손주영과 송승기는 든든한 좌완 선발로 자리 잡았다. 2년 차 김영우 역시 데뷔 첫해부터 필승조로 안착했다.
최근 염 감독의 시선은 천성호, 이재원, 이영빈을 향해 있다. 상무에서 전역한 '거포 유망주' 이
재원과 트레이드로 합류해 묵묵히 기회를 엿보는 천성호, 그리고 '포스트 오지환'으로 불리는 이영빈이다.
이재원에 대해선 앞서 육성 전략에 대해 운을 뗀 바 있 있다. 지난 5일 고척 키움전에 앞서 염 감독은 "야구를 35년 해보니까 파워피처를 키우는 것보다 파워히터를 키우는 것이 훨씬 더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선수 시절부터 수없이 많은 '빅보이'들을 봤지만, 거기서 '파워히터'로 성공한 사람은 7년 만에 터진 박병호 단 한 명뿐이었다"고 회상하며 "박병호 역시 처음엔 능력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4번 타자로 나가 계속 힘들어했고, 결국 2011년에 트레이드되는 과정을 거쳤다. 실패의 과정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이재원에게만큼은 과거의 실패 방식을 똑같이 답습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에 염 감독은 타고난 파워를 1군 투수들의 정교함과 맞바꾸기 위해서는 '작은 디테일'을 채우는 과정이 필수적이라며 "이재원은 경기에 출장하지 않는 날에도 타격 코치와 끊임없이 훈련하며 부족한 디테일을 채워가고 있다. 경기 시작 1시간 전에 나와 배트를 돌리고, 경기가 끝난 후에도 나머지 훈련을 소화한다. 지금 정규시즌을 치르면서 동시에 혼자만의 스프링캠프를 계속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같은 맥락으로 염 감독은 "과정 없는 성장은 없다"고 단언하며 "이영빈이 1군 엔트리에 들어오기까지 2년이 걸렸다. 시간을 들여 준비했기에 지금 자리를 잡은 것이고, 내년에는 더 많은 기회를 받을 것이다. 이영빈은 지난해 천성호가 걸어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1군 콜업이 아닌, 철저한 단계적 레벨 업. 구본혁이 주전급 백업으로 성장한 방식 그대로 천성호와 이영빈을 육성하겠다는 심산이다.
염 감독이 그리는 LG의 최종 완성형은 '베테랑 백업'이 존재하는 팀이다. 그는"어린 선수들이 주전으로 도약하면 2~3년 후에는 오지환, 박동원, 박해민이 자연스레 백업으로 물러날 것이다. 백업 자리에 경험 없는 어린 선수가 있는 건 팀에 큰 도움이 안 된다. 결국 백업에 베테랑이 버티고 있어야 진짜 성적이 나는 팀이다"라고 강조했다.
당장의 1승을 잡기 위해 지고 있는 경기에도 필승조를 밀어 넣는 승부사적 기질, 그리고 3~4년 뒤의 로스터까지 계산해 유망주의 스텝을 밟아주는 치밀함. 겸손하게 "운이 좋다"며 웃는 염경엽 감독의 장기판 위에는 LG 트윈스의 왕조 구축을 위한 모든 계획이 이미 세워져 있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