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사회인 야구에는 리그 수준에서 빠른 공을 던지는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제구가 되지 않으면 마운드에 오를 수 없다. 볼넷을 연발하면 '게임'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할 일이 없어지는 야수는 지치고, 수비와 타격 모두 집중력이 확 떨어진다.
볼 빠르고 제구가 좋으면 특급. 볼은 느려도 최소 스트라이크는 던질 수 있어야 마운드에 설 수 있다.
프로든 아마든 어디에나 어깨 좋은 '스로워(thrower)'는 많다. 하지만 모두가 '피처(pitcher)'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공을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피처다.
사전적 의미로 스로우(throw)와 피치(pitch)는 다르다.
스로우는 '(아무렇게나 빨리) 던지다'라는 의미고, 피치는 '(정교하게) 투구한다'는 의미다. 아무데나 돌팔매질 하듯 던져버리는 선수가 스로워라면,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는 선수가 바로 피처다.
지난 시즌 막판과 가을야구에서 눈물을 쏟은 한화 이글스 투수 김서현. 악몽의 사슬을 올 초까지 끊어내지 못하면서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14일 대전 삼성전에서 5-1로 앞선 8회 2사 1,2루에 등판, 1이닝 1안타 4사구 7개 3실점 하며 역전패를 허용했다. 연패탈출을 위해 무려 6명의 불펜 투수가 등판했던 총력전. 김서현 뒤는 없었다. 마무리가 4점 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면 이길 방법이 없는 경기였다.
문제는 4사구였다. 스피드를 줄여가며 S존 안에 구겨넣으려고 했지만 끝내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했다. 결국 한화는 5대6으로 패했고, 이날 경기 후 김서현은 쿠싱에게 클로저 자리를 넘겨야 했다.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
지난 가을의 악몽, 순간의 압박감 등 사연 없는 비극이 어디있겠냐만 1군 경기는 연습무대가 아니다. 매 경기 1만7000석을 가득 메우는 홈팬들 앞에서는 완벽하게 준비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한다.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면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한 뒤에 마운드에 서야 한다.
비단 김서현 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틀간 무려 28개의 4사구를 남발한 한화 투수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지난달 13일. 김서현은 대전에서 열린 삼성과의 시범경기에서 3-2로 앞선 9회초 올시즌 처음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당시 김서현은 달랐다. 공격적인 피칭으로 단 12개의 공으로 탈삼진 2개와 함께 삼자범퇴 마무리 했다.
인상적인 건 투구 템포였다. 포수에게 공을 건네받기 무섭게 돌려주듯 엄청나게 빠른 템포로 타자를 공략했다. 생각할 시간을 빼앗긴 삼성 타자들도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이날 경기 후 김서현은 "원래 이제 이렇게 빠른 템포는 아니었는데 작년에 내가 생각이 너무 많았다 보니까 이제 생각할 시간을 주지말자는 생각으로 마운드 올랐다"며 "바로바로 던져서 생각할 시간을 줄이고 내 공을 던지는 데만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시범경기를 계속 해봐야겠지만 만약 이게 좋으면 이렇게 가는 게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시즌 초부터 찾아온 시련. 여기서 무너지면 정신적으로 빠른 회복이 어렵다. 뭐라도 해서 다시 일어서야 한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은 예외 없이 찾아온다.
'과거의 실패'를 곱씹고 '미래의 상상'을 두려워 하면 한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이를 악물고 버텨내고, 생각을 줄이고,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말고 현재 해야할 일에 집중해야 한다. 바로 이 순간, 한걸음을 옮기는 오늘의 용기가 내일을 바꾼다.
'강릉고 에이스' 김진욱(롯데)도 무려 5년의 시행착오 끝에 올시즌 특급좌완으로 변신해 나타났다. 위기의 순간마다 LG 강타자들에게 빠른 직구를 과감하게 뿌릴 수 있었던 용기는 과거의 실패, 미래의 두려움을 극복해 낸 결과였다.
3년 차였던 지난해 33세이브로 포텐을 터뜨리며 구원 2위에 오른 김서현의 성공 속도는 엄청 빠른 편이다. 다만, 아직 미완성일 뿐이다.
눈물을 거두고, 생각을 비우고, 앞으로 한걸음 옮기는 용기를 내야할 때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