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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한국 여자농구 야단 많이 쳐달라."
특히 올해는 2015년 대회 출범 이후 10주년의 뜻깊은 해인 데다, 처음으로 유럽 명문팀이 출전해 대회의 의미가 커졌다.
박 여사는 30일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대회 개막에 앞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회견에서 박 여사는 한국 여자농구가 국제 경쟁력이 떨어진 현실을 개탄하며 선수와 대표팀 관계자들에게 채찍을 때려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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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방문한 소감은.
1950년 한국전쟁때 9세의 나미에 가족과 함께 피란온 곳이 부산이다. 당시 전쟁이 발발해 걸어서, 트럭 얻어타고, 화물기차로 갈아타는 등 모진 고생 끝에 도착한 곳이 부산진이라는 곳이었다. 당시 아버지가 방을 구해오겠다며 나가셔서, 어느 집의 외양간 근처에 작은 방을 얻어오셔서 살게 됐다. 그때 그 집을 지금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당시 피란민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분께 감사한 마음을 항상 지니고 있다. 부산에 대한 인상은 그래서 굉장히 좋다. 과거 해운대해수욕장에 가끔 여름 피서를 온 적이 있다. 당시 주변 풍경을 기억에 담고 이번에 다시 갔다가 깜짝 놀랐다. 빌딩숲이더라. 서울 어디를 내놔도 부산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그런 느낌이다
-최근 근황은 어떠신가.
늙어서 뛰는 운동은 하지 못하고 걷는 운동을 주로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골프가 아직 돈 있는 사람들의 운동이지만 내가 사는 미국 시골 동네(로드아일랜드주)에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9홀 골프장을 이용할 수 있다. 2013년 한국 떠나 미국에 정착했는데 2018년 남편이 돌아가신 뒤 딸이 권해서 골프를 접하게 됐다. 작년에 690달러를 주고 1년권을 끊은 게 있는데 주중은 무료이고, 토·일요일은 시간대에 따라 무료이거나 10달러만 내면 된다. 여기서 운동도 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낸다. 서울 친구들은 나보고 상팔자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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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비판을 하면 (정은이가)싫어하겠지…. 솔직히 정은이는 농구 잘 못했다. 가드인데 머리가 좋아서인지 몸 부딪히는 걸 잘 안하더라. 그런데 농구에는 패스를 줄수 있는 라인, 맥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잘 보더라, 정은이가 선수였을 때 하루는 농구인 원로 선배가 "큰일났다. 너보다 농구 잘 하는 애가 나왔다"고 했는데 박정은이더라. 방열 선생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도 정은이는 선수 때보다 감독을 더 잘한다고 하더라.
-이번이 10주년이기도 하고, 유소녀 국제대회가 처음 열렸다. 감회가 남다를텐데.
부산 와서 농구인으로서 가장 기뻤던 게 있다. 연맹 총재, 사무총장, BNK 회장 등 도와주는 윗분들이 너무 농구광이더라. 며칠 전 유소녀 참가 선수들 회식하는 자리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수백명의 아이들이 앉았는데 난 전혀 모르고 갔다가 울었다. 우리나라도 10년 뒤에 이 선수들이 자라면 뭔가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 불씨를 보았다. 너무 기쁘다. 농구에 대한 관심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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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여사는 답변에 앞서 '회견장에 혹시 일본 시람이 있느냐'고 먼저 되물은 뒤 없다고 하자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답변을 이어갔다.) 우리 농구가 일본에게 지고 그런 걸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 나는 사실 지는 걸 몹시 싫어한다. 기자분들이 잘 못하면 채찍질을 많이 해달라. 야단맞고 슈팅연습도 더 해야 한다. 작년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농구가 없어서 너무 화가 났다. 우리 때는 올림픽에 여자농구 종목이 없어서 가지 못했지, 실력이 달려서 그런 적은 없다. 대신 세계선수권엔 당당히 출전했다. 당시 세계선수권에 처음 출전해서 8위였지만 다음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선수들이 1등을 목표로 노력해주길 바란다. 올림픽도 나가지 못하는데…, 야단쳐 달라. 왜 아시안게임에서도 쩔쩔 매고 있나. 잘 한다고만 하지 말고 채찍질을 해줘야 윗분들도 투자를 할 것이다.
-오늘 시투를 맡으셨는데 어떻게 준비했나.
아까 연습을 좀 했는데 골대가 높더라. 처음에 림 밑에 맞더니 겨우 몇개 들어갔다. '연습'하니까 생각난다. 나는 연습광이었다. 중학생 때도 정규 팀훈련이 끝나면 남아서 자유투 10개가 안 들어가면 집에 가지 않았다. 선수촌 훈련할 때도 100개 연속으로 자유투를 성공한 게 두세 번은 된다. 특히 난 운이 좋았다, 자유투 던진 공을 집어주는 트레이너, 부코치들이 있었다. 그런 분들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다.
부산=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