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본좌' 김명민과 김상중의 만남. '신들의 전쟁'이라 부를 만하다. 숨 쉴 틈 없이 휘몰아치는 배우들의 카리스마. 귀신에 홀린 듯 몰입한 순간 찾아오는 카타르시스. 30일 첫 방송된 MBC 새 수목극 '개과천선'의 '연기 귀신'들이 빚어내는 에너지는 단숨에 안방극장을 압도했다. 배우의 연기력을 중시하는 시청자라면 '개과천선'은 결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다.
'개과천선'은 거대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 김석주(김명민)가 기억을 잃은 뒤 지난 삶을 반성하고 자신이 몸 담았던 로펌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게 되는 법정 드라마. 기억 상실 전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김석주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민사재판에서 일본 기업을 변호하면서도 인간적 고뇌조차 느끼지 않는 인물. 주름진 손으로 회한의 눈물을 닦아내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뒤에 두고도 미세한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냉철하게 변론을 쏟아내는 첫 법정신은 상당히 강렬했다. "속사포 대사에서 NG 한번 낸 적이 없다"고 박민영이 증언한 김명민의 연기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고, 실제로 그 재판에서 진 것처럼 분노를 자아냈다. '하얀거탑'과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익히 경험했고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또 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는 절대 존재감이었다.
김상중은 또 어떤가. 자신의 사람을 공직에 진출시키고 문제가 생기자 사퇴를 요구할 만큼 정·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펌 대표 차영우 역. 김상중이 아닌 다른 배우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미세한 눈빛 변화만으로 차영우의 감춰둔 야심을 섬뜩하게 전달했고, 안경을 고쳐 쓰는 행동 하나에서도 두려움이 느껴질 만큼 극의 분위기를 지배했다. "무죄라는 건 말이야,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야. 죄가 있는 걸 증명하지 못했다는 말이지"라는 차영우의 대사는 첫 회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모든 걸 함축했다. 묵직하게 깔리는 김상중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강렬한 잔상을 남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제작발표회에서 '연기배틀', '꿀성대 대결'이라고 표현된 김명민과 김상중의 본격 맞대결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심지어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도 별로 없었다. 각자 다른 인물들과 다른 이야기를 주고 받았음에도, 마치 탁구 테이블 양쪽에서 쉴 틈 없이 스매싱을 날리고 되받아치며 랠리를 펼치는 듯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흑과 흑이 만났는데도 양쪽 모두가 더욱 뚜렷하게 부각되는, 뜻밖의 조화였다. 김석주가 사고로 기억을 잃고 그야말로 '개과천선'한 후 두 사람이 정면에서 부딪힌다면 그 충돌 에너지가 어느 정도로 강렬할지 가히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개과천선'은 두 배우의 연기를 통해 승자독식이 곧 정의가 되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대본에 담긴 것 이상을 구현해내는 배우들이 함께한다는 건 '개과천선'에겐 최고의 행운이자 기회다. 약자가 보호받고 진실이 거짓을 이기는 진정한 정의를 두 배우의 명품 연기를 통해 경험하게 될 시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