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주 동안 가면을 벗지 않는 출연자가 탄생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MBC '일밤-복면가왕' 제작발표회 당시, 연출자 민철기 PD가 경연 룰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막연한 희망처럼 덧붙인 얘기다. 그런데 이 말이 그저 바람으로만 그치지 않고 점점 현실이 돼 가고 있다.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의 무시무시한 복면가수 때문이다.
일부에선 '복면가왕'이 '편견 없는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클레오파트라를 이겨라'라는 미션으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응은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폭발적이다. 그의 인기는 점점 '신드롬'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방송 당일뿐만 아니라 수시로 그의 이름이 검색어에 오르내리고 그의 무대 영상은 유튜브에서 30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5일 방송 직후 공개된 클레오파트라의 음원 4곡 모두 6일 오후 3시 현재 벅스뮤직 실시간 차트 10위권에 들었다. 7대 가왕곡 '사랑할수록'은 실시간 차트 1위를 차지했고, 이보다 2주 앞서 공개된 '사랑…그놈'도 13위에 올라 있다. 2012년 발표된 노을 전우성의 '만약에 말야'는 실시간 차트 40위에 이름을 올렸다. 클레오파트라로 인해 원곡까지 재조명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가 누구인가는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다. 연예인 판정단으로 활약 중인 작곡가 김형석도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클레오파트라가 누군지 짐작하고 있다. 노래를 워낙 잘하니까 그가 누군지는 덜 중요하다. 다음주에 또 듣고 싶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의 복면을 벗기는 것보다 그의 무대를 보는 것이 더 즐거운 볼거리가 됐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제 클레오파트라는 도전자들이 아닌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비슷한 무대를 계속 보여줘서는 더 이상 놀라움과 새로움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5일 방송에서 7대 가왕에 오른 후 "그동안 전혀 시도하지 않았던 장르에 도전하겠다"고 밝힌 그의 다짐과 각오가 반갑게 들린다.
매주 시청자들을 놀라게 하는 새로운 복면가수의 등장과 함께 '클레오파트라 신드롬'은 '복면가왕'의 상승세를 이끄는 동력이 되고 있다. '복면가왕'은 5일 방송에서 시청률 13.1%(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 3주 연속 자체최고시청률을 갈아치웠다. 동시간대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14.1%)를 1% 차이로 턱밑까지 추격했다.
이날 또 다른 시청률조사기관 TNMS가 집계한 분당 최고 시청률은 21%(수도권 기준)까지 치솟았다. 바로 클레오파트라가 가왕 즉위식을 하는 장면이었다.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실감할 수 있는 숫자다.
연출자 민철기 PD는 제작발표회에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등장해 "시청률 20%를 넘기면 복면을 벗겠다"고 공언했다. 당시엔 "20%를 얘기한 건 건 안 벗겠다는 뜻이다. 현실적으로 7~8%만 나와도 만족할 것 같다"고 했지만, 이룰 수 없는 꿈 같던 이 소망도 점점 현실이 돼가고 있다. 꿈의 시청률 20%까지는 7%밖에 남지 않았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