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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인생사 새옹지마야." 영화 '사도'에 대한 호평을 전해듣던 이준익 감독이 손사래를 쳤다. "들떴다가 또 뒤통수 맞을 수도 있어." 괜한 엄살과 함께 '껄껄껄' 호탕한 웃음이 이어진다. "나이 들면서 돌아보니, 지나간 상처와 부끄러움들이 인생에 큰 약이 된 것 같아요.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더라고. 그래서 영화를 찍는 게 점점 무서워져요. 아무렴, 영화를 찍는다는 건 아주 무서운 일이야."
"사도에 대해 권력싸움의 희생양이라고도 하고, 반대로 그냥 미치광이일 뿐이라고도 하죠. 학계에서도 양립된 논리가 있어요. 저는 사도라는 인물을 온전하게 표현하기 위해 영조에서 사도와 정조로 이어지는 56년간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시간의 흐름과 주변과의 관계성 안에서 한 인물을 살펴봐야 그의 입체성이 드러나거든. 아들로서의 사도, 아버지로서의 사도, 남편으로서의 사도는 모두 다른 인물이에요. 그래서 꼭 아들 정조의 이야기가 필요했어요. 56년간의 회한을 품어낼 수 있는 인물은 정조밖에 없거든. 그러니 정조가 해원(解寃)의 춤을 추는 장면이 이 영화의 마지막이어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이 영화를 찍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죠."
그렇다면 이준익 감독 영화 인생의 '업덕복'은 무엇일까? "글쎄, 다른 건 몰라도 업은 무지하게 많지." 어떤 작품들이 그가 떠올린 업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덕은 영화 '소원'이 아닐까 싶다. 2013년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아동성폭행사건의 피해 가족들이 일상성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보듬어낸 수작 중의 수작이다. 이준익 감독의 변화는 이때부터 시작했다. "정말 '소원'을 통해 많이 배웠어. 정말이야. 배움이 컸어. 영화 인생 자체가 바뀐 거 같아." 그래서 지금 이준익 감독은 '사도'를 통해 '복'을 받을지 모른다.
지금 이준익 감독에겐 '사극 거장'이란 존경의 칭호가 따라붙고 있다. 사극을 제일 잘 찍는 감독이고, 사극을 가장 잘 이해하는 감독이란 뜻이다. 과거의 '황산벌', '평양성',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그리고 천만 영화 '왕의 남자'와 흥행 질주 중인 '사도'까지. 그가 사극 장르에 매료된 이유가 궁금하다. "내가 존재하는 건, 더 먼 과거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와의 연장선상이란 말이지. 나 또한 언젠가는 떠날 것이고. 그러니 내가 현존하는 지점에 나를 묶어놓아서는 안 된다고 봐요. 역사 속 인물을 타자화하지 말자는 거지. '사도'도 마찬가지고. 역사라는 사회적 유산을 소환해, 그들의 삶을 다시 밟아볼 필요가 있어요. 역사 속 인물을 통해 우리를 비춰본다는 건 결국 오늘을 얘기하는 일이에요. 그게 얼마나 행복한 거야. 거기에 앞서서 나에겐 끌림의 법칙도 있어요. 의지에 상관없이 끌리는 데 어떻게 하겠어. 그들의 아픔이 아름다운 걸 어쩌겠냐고.(웃음)" suzak@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