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병헌 "힘 다할 때까지 배우로 살고 싶다"

기사입력 2015-11-12 09:28


사진제공=쇼박스

[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배우는 연기로 말한다. 이병헌도 오로지 연기로 자신을 증명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내부자들'은 이병헌의 '존재'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의 강력하고 진실한 '존재 증명'에 설득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내부자들'은 정치인, 재벌, 언론, 검찰, 조폭 등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권력의 유착관계를 사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이병헌은 유력 신문의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의 하수인으로 권력자들을 위해 뒤치다꺼리를 하는 정치깡패 안상구를 연기한다. 안상구는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의 비리를 건드렸다가 모든 걸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 뒤, 출세를 꿈꾸는 검사 우장훈(조승우)을 만나 복수를 계획한다.

"사회성 짙은 영화에 출연한 건 처음인데, 거창한 목표는 없었어요. 늘 그랬듯 시나리오가 얼마나 재밌느냐를 보고 선택한 작품이죠." 탄탄한 스토리에 매료된 이병헌은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보태 영화를 풍성하게 채웠다. 살벌한 음모와 암투 속에 잠시나마 숨통을 틔워줄 인물은 안상구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오른손을 잃고 폐인이 된 안상구가 허름한 빌라 옥상에서 홀로 라면을 끓여먹다가 뜨거워서 도로 뱉어내는 장면, "모히또에 가서 몰디브나 한잔 하자"는 우스꽝스러운 대사, 우장훈 검사와 만난 모텔방의 반투명 통유리 화장실 장면 등 영화를 보면 웃음이 터지는 장면들이 그의 애드리브로 완성됐다. "말보다 상황으로 웃기는 장면들을 좋아합니다. 이 영화에도 그런 장면을 한두 개쯤 넣고 싶어 애드리브를 했는데, 관객들이 웃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내심 걱정하기도 했어요."

배신에는 인정사정 없이 잔인한 안상구지만, 이병헌은 그를 멋을 아는 '낭만깡패'로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원래 시나리오에 영화광으로 설정된 안상구가 영화 속 명대사를 인용하는 장면들을 예로 들면서, 러닝타임 때문에 영화에 미처 다 담기지 못한 걸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1차 편집한 디렉터스 컷은 3시간 40분이었어요. 시사를 했는데 다들 환호하면서 만족스러워했어요. 분량이 넘치니까 1, 2편으로 나누자는 농담까지 했죠. 그 후로 캐릭터 중심 버전, 시나리오 순서 버전, 사건 중심 버전 등으로 편집했고, 결국 마지막 사건 버전으로 개봉하게 됐어요. 탄탄한 캐릭터들이 묻힐까봐 아쉬웠는데 막상 시사회에서 보니 영화가 힘있게 전개가 되더군요."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설정 때문에 이병헌은 생전 처음 사투리 연기에 도전했다. "영어보다 어렵겠냐는 생각으로 덤볐다"는 그는 전라도 출신 스태프들 앞에서 시연해 보고 점검 받으면서 캐릭터에 맞게 자신을 다듬어갔다. "배우가 캐릭터에 설득 당하지 못하면 몰입할 수 없으니 어떻게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그의 신념이 촬영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다.

이병헌은 이 영화에 특별히 힘을 쏟았다. 촬영 기간 중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세간의 입길에 오르내렸고, 영화에 폐를 끼칠까 걱정돼 더욱 촬영에 전념했다. 개봉을 앞두고 조심스럽게 대중 앞에 선 것도 이런 책임감 때문이다. "'협녀, 칼의 기억' 개봉 때는 미국에서 영화 촬영을 하고 있어서 도저히 스케줄을 조율할 수가 없었어요. 만약 제가 한국에 있었다면 당연히 영화를 위해 무엇이든 했을 겁니다. '내부자들'도 마찬가지예요. 배우로서 영화를 알리는 건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시종일관 진지하던 이병헌이 아이처럼 활짝 웃던 순간은 바로 어린 시절 영화에 대한 추억을 꺼낼 때였다. 네 살 무렵 영화관에서 사촌형의 무등을 타고 봤던 '빠삐용'의 한 장면, 오징어 냄새와 담배 냄새가 뒤섞인 영화관의 매캐한 공기, 스크린 위에서 펼쳐지던 상상과 공상의 세계…. "영화를 좋아한 건지, 영화관의 분위기를 좋아한 건지 잘 모르겠다"던 '영화광' 소년은 시간이 흘러 영화배우가 됐고, 여전히 영화를 꿈꾸고 있다. "힘이 다할 때까지 배우로 살고 싶습니다." suzak@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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